투잡의 시작
전남친이 고향으로 올라간 지 1년쯤 지났을 때, 아버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지시고 며칠 만에 돌아가셨다. 20대 전남친은 어느 날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살아생전 아버님은 큰 규모로 벼농사를 짓고 계셨다. 소도 키우셨고, 밭농사도 겸업하셨다. 시골 농사꾼이시지만, 재산을 늘리기 위해 대출의 필요성을 잘 알고 계셨다. 농사짓기엔 좋지 않지만, 투자가치가 있는 땅을 골라 사셨다. 주택을 담보 토지를 샀다. 토지를 담보로 또 다른 토지를 샀다.
그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아버님이 어떻게 돈을 빌려서, 어떻게 갚고 계셨는지. 땅 대출뿐만 아니라 보증 잘못 서서 대신 갚는 돈, 빌려주고 못 받은 돈도 남몰래 갚고 계셨다. 상상이나 해봤을까, 아버님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그렇게 모인 은행 대출이 총 3억 정도였다. 요즘의 3억도 적은 돈이 아니지만, 15년 전 3억은 월급쟁이였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대출 상품별로 금리는 2%에서 9%까지 다양했다. 3억에 대한 1년 이자는 금리 5%로 잡으면 1500만 원이나 된다. 원금상환까지 생각하면 1년 동안 농사로 번 돈 대부분이 은행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조금 무모해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님은 꽤 과감한 투자자셨다. 대부분의 농사꾼들은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다. 1년 동안 쌔빠지게 농사짓고 번 수입의 약 25%는 도지로 나간다. 시골에서 부자는 땅 많은 사람이다. 땅 빌려주고 도지 받으며 살다가, 땅값이 오르거나 개발구역으로 수용당해서 떼돈을 번다. 그래서 아버님은 땅에 투자하셨고, 그 가치를 인정받기 전에 돌아가셨다.
재산은 상속된다. 빚도 상속된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이 돈을 어떻게 갚을까?'라는 큰 문제를 마주했다. 대부분 토지구매, 농기계 구입으로 쓴 돈이고 모든 토지와 주택에 대출이 잡혀 있었다. 모두 처분해서 대출을 갚으면 남는 게 없었다. 그동안 아버님이 고생하셔서 일군 것들이 제로가 되는 셈이다.
시골에 살다 보니 이런 상황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건강이 안 좋아지거나 돌아가시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기계고 땅이고 다 헐값에 급처분해 버린다. 손해인걸 알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도 없고, 여건도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시골의 고령화로 이런 소식이 점점 더 자주 들리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다.
전남친은 결국, 회사를 관두고 가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농기계 작업부터 농사일, 축사일을 다 도와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급매로 처분하면,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다. 농기계도 다 있으니까 못할 건 없었다. 농사로 대출을 갚을 생각에, 아버님이 남기신 대출을 혼자 떠안게 되었다.
농사는 후불제로 운영된다. 벼농사의 경우, 봄에 모를 심어서 여름 내내 물과 병충해를 잘 관리하고 가을에 수확한다. 수확한 볍씨를 판매하면 11월 이후로 돈이 생긴다. 그때까지 사용할 농사비용을 따로 마련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농약, 비료, 면세유, 기계수리비, 부품비 등 생각보다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 거기에다 수시로 대출이자 납부도 해야 하고, 매월 생활비까지 감당해야 했다.
사료값 부담이 큰 소부터 처분했다. 1마리에 200만 원씩인가 처분했는데, 몇 년 뒤에 소값이 올라서 500만 원씩 했다. 배는 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농사에 쓸 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남친은 다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나는,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것 밖에 도와줄 게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로 시작하는 아주 클래식한 자기소개서였다. 덕분에 취업에 성공했고, 그렇게 전남친의 투잡은 시작되었다.
그땐 지금보다 농사도 더 많았고, 회사생활은 더 바빴다. 전남친은 잠을 줄여가며 일했다. 바쁜 농사철엔 새벽에 일하고 출근했다. 퇴근하면 다시 논으로 갔다. 그렇게 전남친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몸소 실천했다.
스스로 커다란 목표를 진지하게 세우는 순간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반면 대부분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위험을 피하려고 애쓴다.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위험을 겪는 대신 공허한 타협을 하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만 한다. - 밥 프록터 <밥 프록터의 본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