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적응 최적화 상태

사투리 안 쓰는 부산 사람

대학교 전공을 신문방송학과로 결정하고, 나름의 허세랄까 왠지 표준어를 써야 할 것만 같았다. 표준어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신방관데, 표준어는 쓸 줄 알아야지. (아니다)' 그래서 아나운서처럼 책 읽기 연습, 리포터처럼 말하는 연습을 몰래몰래 했다. 그렇게 20살 때부터 사투리를 안 쓰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사투리 쓴 세월보다 더 오랫동안 사투리를 안 쓰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사투리를 안 쓰려면, 표준어를 계속 듣고 사용하며 연습해야 한다. 그런데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사람인 거 뻔히 아는데, 부산사람들 앞에서 서울말을 쓴다면? 백퍼 비웃음을 살 일이다. 진천에 산지 7년쯤 됐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랜만에 외가 친인척이 모두 모였는데, 진짜 오랜만에 만난 친하지도 않은, 철없는 사촌언니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야, 니 말투 뭔데? 님, 서울 사람이세요?ㅋㅋㅋ" 이런 주변 반응 때문에, 사투리를 안 쓰려는 노력이 생각보다 어렵다.


결정적으로 내가 사투리를 고칠 수 있었던 계기는 '알바' 덕분이었다. 고3, 수능을 치고 바로 알바를 구했다. 롯데리아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과감했던 도전이었, 내 안에 숨어있던 외향형이 처음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내성적이고, 사회성 없던 아이가 패스트푸드점 그것도 광안리 해수욕장 입구에 있던, 당시 부산에서 제일 바쁜 매장일 것 같은 곳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표준어를 써야겠다는 개념은 없었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인만큼 말을 이쁘고 또박또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대학생이 되었다. 학교 근처에 있던 피자헛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피자헛 샐러드바 무한리필을 경험해 본 세대라면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피자헛은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아웃백만큼이나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 덕분에 서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표준어 연습을 많이 할 수 있었다. 피자헛에서 3년, 어색했던 서울말은 완벽한 표준어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다져진 표준어는 이후 직장생활에서 전화를 받거나, 고객대응을 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그렇게 터득한 표준어는 충청도에 적응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시골은 혈연, 지연, 학연이 도시보다 더 탄탄해서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것 같다. 특히나 다른 지역 사투리를 쓰는 건, '나 다른 데서 왔어요!'하고 티를 팍팍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부산 사람이란 얘기를 들은 남자친구의 가족들은, 사투리가 심해서 말이 안 통할까 봐 걱정하셨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모두들 "부산 사람인데 사투리를 전혀쓰네? 신기해라."는 반응이었다.


충청도 분들 입장에서, 경상도 사투리는 강하고 억세고 알아듣기 힘든 말이다. 그런데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만 살다 온, 순도 100% 부산사람인 내가 사투리를 전혀 안 쓰니 신기할 수밖에. 덕분에 어른들께 인사하고 자기소개만 했을 뿐인데, 며느리감으로 이쁨을 받기 시작했다. 역시 될놈될?ㅋ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은 누구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안전지대 안에만 머문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 박민선 <아주 작은 시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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