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울구경] 시민들의 산책로가 된 '경춘선 숲길'

서울시 노원구 '경춘선 숲길'

by 김종성
SE-aeb11618-d897-42b9-b287-97d3e075eb24.jpg 경춘선 숲길의 명소, 간이역 화랑대역 / 이하 ⓒ김종성


우리나라 곳곳에 이어진 철도노선 가운데 경춘선만큼 내게 애틋한 열차는 드물지 싶다. 학생시절은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허해질 때, 주말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사랑하는 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날 때...경춘선 열차에 몸을 싣고 춘천여행을 떠나곤 했다.


좌석이 넓고 창문이 큰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에서 보이는 북한강변 풍경, 간식거리가 든 카트를 끌고 열차 통로를 지나가던 이동 매점 아주머니, 열차 맨 뒤로 가면 볼 수 있는 시간이 거꾸로 가듯 뒤로 물러서며 펼쳐지는 풍경 등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은 장면들이다.


경춘선 열차가 다니던 철길 위를 사람들이 거닐 수 있게 조성한 곳이 ‘경춘선 숲길’이다. 지난 2010년 폐선이 된 후 경춘선이 지나가던 길 중 서울시 구간인 6.3km에 숲길을 조성했다. 철길은 도심 속 공원, 도깨비 시장, 옛 간이역, 육군사관학교(화랑대), 왕릉 등 다채로운 곳을 지난다.


철길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만든 산책로 옆에 자전거도로도 나있어 자전거타고 거닐기도 좋다. 6호선 지하철 화랑대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SE-63974721-282c-4198-8a0f-cc08de5469a3.jpg 화랑대역 앞 기차 박물관
SE-58a1e48a-c747-4db2-bee0-287737851900.jpg 화랑대역 안 경춘선 열차 객실 체험방


경춘선 숲길의 명소 간이역 화랑대역(노원구 공릉동)으로 가면 고풍스러운 옛 기차들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 기차박물관 분위기로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 참 좋은 곳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며 달렸다는 증기기관차, 대한제국시대 우리나라 최초로 운행되었던 개방형 노면전차, 궤도 간격이 좁아 작고 귀엽게 느껴지는 협궤열차, 외국에선 트램이라 불리는 전차까지 다종다양한 기차들이 들어서 있다.


작고 아담한 간이역 화랑대역은 서울에 있는 마지막 간이역이었다. 소박하고 정다운 간이역 분위기가 좋아 춘천여행을 떠날 때, 청량리역에 가지 않고 화랑대역에서 열차를 타곤 했다. 처음 이 역이 생겨날 때 이름은 태릉역이었으나, 1958년 육군사관학교가 경남 진해에서 역 주변으로 이전을 하면서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커 2006년 12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됐다. 화랑대역 안 대합실과 역무원 사무실 공간에는 철도관련 전시물과 경춘선 기차 객실 모양의 체험 공간 등이 있어 흥미롭다.

SE-3858c7a4-bb4a-4e21-9d72-7dfc761f2222.jpg 철길가에 자리한 공릉동 도깨비시장
SE-130d46a0-886f-4db7-be68-6268e474cc23.jpg 자전거 여행자의 갈증을 단번에 해소해준 콩국물


‘멈춤’이라고 적혀있는 경고판이 서있는 등 철도 건널목의 흔적이 남아있는 철길가에 전통시장도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 철길 옆에 하나 둘씩 생겨난 노점들이 모여 시장이 되었다는 공릉동 도깨비시장(노원구 동일로 180길 37)이다.


경춘선 숲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맛집과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장 안 두부를 손수 만드는 가게에서 파는 ‘직접 갈아 만든 콩국물’을 사먹었다. 고소하고 달달한데다 갈증이 금방 사라지는 게 어떤 음료보다 자전거 라이더에게 좋았다.


시장 입구 철길변 벤치에서 만난 주민 할머니는 과거 상인들이 저녁시간에 장을 보러온 손님들을 대상으로 잠시 장터를 열었다가 금세 사라져서 도깨비란 말이 붙었다고 알려 주셨다. 지금은 서울시 노원구에서 가장 큰 시장 가운데 한 곳이 되었다.

SE-5b8adc83-025c-4bc8-b7d3-c6b01a6aa12d.jpg 안내 센터로 사용중인 무궁화호 경춘선 열차
SE-12a0598f-fdb1-4c7d-a0fd-9d6329526b96.jpg 중랑천 위를 지나는 경춘철교


철로 한가운데 서 있는 무궁화호 열차 2량도 눈길을 끈다. 실제 경춘선 철로를 달렸던 열차라고 한다. 이곳은 경춘선 숲길 방문자 센터로 시민들을 위한 각종 이벤트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마을안길, 공원, 텃밭을 지나는 정겨운 구간은 다가구 단독 주택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곳을 지나는 철길에 난 산책로, 쉼터와 작은 가게들은 여행자는 물론 동네 주민들의 만남과 소통의 장소가 되고 있었다. 양팔을 옆으로 펴고 뒤뚱거리며 철도 위를 걷는 동네 아이들이 귀엽기만 하다.


경춘선 숲길 끝 구간은 중랑천 위를 지나는 경춘 철교길이다. 한강의 지류 가운데 가장 길고 큰 하천인 중랑천을 발아래로 바라보며 호젓하게 지나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쿠궁쿠궁’ 거친 숨소리를 내며 열차가 달려 지나갔던 녹슨 철로 위로 남녀노소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이채롭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울구경] 자전거 탄 출퇴근, 매일 매일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