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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Jan 30. 2021

기러기 날아다니는 한강의 제 1지류, 공릉천 자전거여행

경기도 파주시 공릉천 

밀물과 썰물이 드는 질펀한 공릉천 하류 / 이하 ⓒ김종성

추운 겨울날 햇살 따스한 포근한 날씨를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대문 앞에서 이제나 저제나 주인과 함께 달리기를 기다렸던 애마 자전거를 타고 공릉천을 향해 달려갔다. 공릉천은 경기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개명산에서 발원해 고양시를 거쳐 고양시, 파주시의 대지와 벌판을 어루만지며 유유히 흐르다 파주시 교하읍에서 송촌리에 있는 자유로 송촌대교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총길이 45.7㎞의 긴 물줄기다.   

  

공릉천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하천이지만 한강 권역의 한강 수계에 속하는 한강의 제1지류다. 서울에서 가깝고 상류 계곡 안에서도 곡류가 심해 경치가 수려하고, 유속도 빠르지 않다. 상류는 산을 휘돌며 대지를 적시고 중류와 하류는 예전부터 지역에 농수를 공급하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친근한 하천이다.     


공릉천은 수도권 경의선 전철을 타고 금릉역에 내리면 가깝다. 금릉역에서 공릉천, 천변을 달리다 만나는 파주 삼릉과 장릉까지. 천변 동네에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가 잠들어있는 능(陵)이 들어간 명칭이 많다. 이밖에도 하천 연안엔 고려시대 공양왕의 무덤과 백제의 최영 장군 묘도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자리가 좋은 명당 하천이라는 게 미루어 짐작이 간다.     


천변 오일장터 봉일천 시장     

5일마다 열리는 봉일천 장터
불맛의 최고봉 가래떡 구이

공릉천변을 지나다보면 주민들만 아는 봉일천 오일장(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이라는 작은 장터도 있다. 매 2일과 7일(2,7,12,17,22,27일)에 시장이 선다. 이 장터를 알게 된 건 정영신 작가의 사진집 <한국의 장터>를 읽고서인데, 경기도 파주에 여러 오일장이 서고 있는 사진들을 보고 놀라웠다. 대도시는 물론 소읍까지 들어선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들 세상에서 이런 오일장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게 고맙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오일장터의 분위기와 닮은 정겨운 '자매신발' 가게와 삼색등이 회전하는 '마을 이발관'을 지나면 아담한 봉일천 시장이 자전거 여행자를 반긴다. 바로 옆 대기업 마트와 편의점의 영향으로 시장의 크기는 작기만 했다.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을 오일장터는 대로변에서는 보이지 않는 골목안쪽에서 숨어 있는 듯이 열리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가래떡 구이의 구수한 연기와 냄새가 여행자를 골목 시장통으로 이끈다.     


소박하지만 애틋한 마음이 드는 봉일천 오일장. 예전엔 이 자리가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이 열렸던 자리라고 곶감을 파는 어느 상인분이 알려주셨다. 마을 앞을 흘러가는 공릉천을 예부터 봉일천이라고 불렀단다. 긴 하천은 지나는 마을마다 서로 다른 이름이 붙어있다. 봉일천리는 시장 외에 봉일천 초교, 봉일천 중고등학교, 봉일천 우체국, 봉일천 성당 등이 자리하고 있는 생각보다 오래되고 큰 동네다.     


이불을 덮은 사각 우리 안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안쓰럽고 귀여운 강아지들, '셈베이'라 불리는 옛 과자, 손님의 주문을 받고 열심히 생선의 포를 떠는 상인들, 어릴 적 참 많이 먹었던 튀각 가게... 작디작은 오일장에 있을 건 다 있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다행히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어 오일장이 훨씬 활기 있어 보였다. 직접 기르고 수확한 채소들을 작은 그릇들에 담아 파는 아주머니는 이래 뵈도 파주의 여러 장터에서 수십 년간 장사를 해 아들, 딸 다 키웠다고 자부심이 담긴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파주의 오일장은 다섯 군데나 있다. 매 1일, 6일에 열리는 경의선 금촌역 앞 금촌장을 시작으로 문산역 앞 문산장(매 4일/9일), 공릉천을 따라 난 봉일천장(매 2일/7일), 법원읍 법원장, 임진강에서 가까운 적성면 적성장(매 5일/10일)이 열린다. 소읍과 장터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보물 같은 파주의 장날이겠다.     


산책하기 좋은 녹색지대 파주 삼릉

맑은 공릉천 물줄기
햇볕이 참 따사로워 단잠을 부르는 삼릉 재실

공릉천 부근 지도를 보면 웬 녹색지대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파주 삼릉(파주시 조리읍)이다. 주말이지만 추운 겨울날이라 그런지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더니 정말 이 큰 녹색지대를 오롯이 혼자서 거닐게 되었다. 공릉, 순릉, 영릉이 있는 파주 삼릉은 세 분의 왕후와 영조의 맏아들로 겨우 10세에 세상을 뜬 진종이 묻혀있다. 공릉과 순릉에 묻힌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도 17세,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로 42기 능 어느 하나도 훼손되거나 인멸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 조선시대에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한 덕이다.     


삼릉에 들어서면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는 능참봉이 살았다는 한옥 집 '재실'이 맞이한다. 아담한 마당을 마주하고 있는 작은 툇마루에 쉬어갈 겸 앉으니 햇살이 얼굴을 어찌나 따사롭게 비추는지 하마터면 단잠에 빠질 뻔했다. 왕릉이라 양지바른 명당자리인 게 맞긴 맞나보다.

왕릉으로 가는 신성한 돌(박석) 길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계수나무 잎

겨울날에도 독야청청한 소나무들도 좋고 왕릉사이 작은 개천가에 졸졸 흐르는 청명한 물소리를 따라 걷는 기분이 참 좋다. 왕릉마다 입구에 높이 서있는 붉은 홍살문을 시작으로 돌(박석)이 깔린 길이 제단과 무덤을 향해 길게 나있다. 왕릉에 올적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이 돌길은 하나의 길 같지만 조상이 오가는 신도(神道)와 자손(임금)이 오가는 어도(御道)로 나뉘어 있다. 중국에는 여기에 황제가 오가는 황도(皇道)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삼릉의 제단길엔 신도와 어도의 구분이 잘 안되어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그래도 명색이 왕릉인데 이렇게 허술하게 길이 나있을까? 공릉을 나오다 왕릉을 깨끗하게 정비하는 일을 하시는 초로의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제단길이 생각나 혹시나 하고 여쭤보았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6.25 한국전쟁 때 사람들이 인근 장곡리에 피난을 많이 왔었는데 전쟁이 오래가면서 집을 짓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온돌방에 들어가는 구들장을 만들고자 삼릉에 있는 제단길의 돌들을 가져갔다는 거다. 박석으로 만든 평평한 돌들이 온돌의 구들장용으로 딱 맞았던 것. 후손들의 비극과 추위를 삼릉의 조상들도 이해하실 게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삼릉의 푹신한 흙길 산책로를 거닐다 마주친 한 무리의 그 계수나무들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관상용으로 일본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노란 단풍이 예쁘고 떨어진 낙엽에서 설탕을 끓인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표소 입구에서 삼릉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낙엽을 쓸고 따로 봉지에 담아 놓은 계수나무 잎에선 놀랍게도 저녁마다 집에 가는 날 유혹하던 동네 빵가게 냄새가 났다. 다른 낙엽과 달리 쓸어버리지 않고 모아 놓을만했다.

공릉천을 가로막고 자리한 냉전의 상징물

공릉천에서는 국토관리청에서도 없애지 못한 하천 인공구조물이 여러 개 있다. 보처럼 하천을 가로막고 있는데 큰 돌기둥들이 촘촘히 서있는 요상한 모양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천변에서 산책하는 주민들을 붙잡고 여러 번 물어본 끝에 강아지와 산책 나온 칠순의 할아버지에게서 그 정체를 알게 됐다.     


전쟁에 대비해 탱크나 군용트럭이 못 지나가게 만든 '용치'라고 한다. 용의 이빨이라는 뜻의 용치는 하천은 물론 서해안과 백령도 같은 섬 주변에도 흔한 흉물로 일종의 군사용 방어선이다. 6.25전쟁과 월남전까지 겪은 할아버지는 전쟁이란 일어나선 안 될 정말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라 강조하셨다. 그래서일까 잠시 나눈 얘기 중에 당신이 경험한 구체적인 전쟁관련 이야기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철새들이 사는 갯벌과 갈대밭이 펼쳐진 공릉천 하류     


길은 비포장 뚝방길로 바뀌어 이어지는데 바로 공릉천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3km 가량의 하류 구간이다. 그동안 달려온 도시 하천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자연 하천 그대로의 풍광이 펼쳐진다. 비포장 흙길이라 자전거도로처럼 속도는 안 나지만 그 덕에 하천과 하천에 기대어 사는 동식물들을 천천히 마음속에 담을 수 있다.     

점점 하천폭이 넓어지더니 드문드문 서있는 키 큰 나무를 품고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과 질펀한 회색빛 갯벌이 나타나 여행자를 놀라게 했다. 바람이 불적마다 물결치는 갈대의 군무는 쓸쓸함을 넘어서 말못할 아름다움과 감동이 느껴졌다. 마치 전남의 명소 순천만으로 흘러가는 순천 하류를 떠오르게 하는 하천길이다.

겨울철새들의 보금자리 공릉천 하류
힘찬 소리를 내며 편대 비행중인 기러기

뚝방길 오른쪽은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임금님 진상품 파주 경기미가 나오는 들녁이다. 너른 들판 너머로 조선시대 인조의 능인 파주 장릉이 있다. 왕릉이 자리할 만큼 주변의 지형 또한 아름답다. 이곳은 철새들이 겨울을 나는 지역이기도 해, 왜가리·중대백로·흰뺨 검둥오리·청둥오리 등 새들의 먹이 터이자 보금자리다.


머리 위 하늘에선 거위와 비슷한 목소리의 기러기들이 떼로 편대 비행을 하며 날아가는데, 주변에 사람은 없었지만 철새들이 놀랄까봐 속으로만 감탄을 삼켰다. 공릉천의 백미인 하류에 자전거도로를 깔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천 하류 습지에 길을 내 자전거도로와 보행로를 만들고 사람들의 소음이 들려오면 아마 저 새들은 모두 쫓기듯 다른 곳으로 떠나갈 것이다.     


오후 5시가 넘어서자 공릉천 너머 한강으로 벌써 뉘엿뉘엿 해가 지려하고 그림자가 길어졌다. 자전거 핸들을 꺽어 금릉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노을이 내려앉고 있는 갯벌은 놀랍게도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전거 페달질을 멈추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고, 하천 곳곳에 앉아 쉬고 있는 철새들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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