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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Sep 15. 2022

수도권 시민들이 마시는 물의 근원, 팔당호 여행 -2편

경기도 팔당호 자전거여행 

수몰된 마을의 흔적이 남아있는 드넓은 팔당호 / 이하 ⓒ김종성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 마재마을 


팔당호 수변길은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마을 능내리(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를 지난다. 폐역이 되었지만 기차가 멈추고 난 뒤 더 유명해진 간이역 능내역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마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 큰 물줄기가 넘실거리고, 뒤로는 듬직한 예봉산과 운길산이 든든하게 서있는 형세를 갖춘 풍경 좋은 마을이다. 

 

아늑한 기분이 드는 마재마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 묻힌 곳으로 부인과 함께 잠들어 있는 무덤과, 생가인 여유당, 다산기념관, 실학박물관 등이 모여 있다. 모든 시설은 무료입장이다. 품이 넓어 그늘 시원한 나무들이 많아 산책하기 좋고, 생가인 여유당(與猶堂) 고택 툇마루에 앉아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을 즐기다보면 절로 여유로운 마음이 생겨난다. 


다산 유적지에서 팔당호 호숫가를 따라 다산생태공원을 오가는 다산길도 나있다. 고요한 물과 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있다. 이곳은 아침에 일찍 오면 올수록 좋다. 팔당호에서 피어나는 몽환적인 물안개를 볼 수 있어서다. 

정약용 선생이 잠들어 있는 마재마을
다산생태공원 호수길

정약용(1762~1836)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아 형조참의를 하며 과학수사관으로 이름을 날리고 암행어사 등의 벼슬을 한다. 하지만 정조 임금이 1800년 갑자기 세상을 뜨자 다산의 삶은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마흔 살 나이에 멀리 전남 강진으로떠나 무려 18년간이나 귀양생활을 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말년을 보내다 돌아가셨다. 


유배 중에도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면서 정치·경제·과학·공학 등의 분야를 아우르는 500여권의 책을 썼으나 세상에 나오지 못했고 조선의 발전에 쓰이지 못했다. 다른 실학자들의 저서와 함께 필사본으로만 전해지다가 1934년에야 '조선학운동'의 일환으로 비로소 간행되었다. 


1925년 7월 발생한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이 일대 강변마을은 파괴되었고 다산유적지는 유실되었다. 엄청난 물난리 속에 5,320권 183책에 달하는 저술이 모두 떠내려가고 말았다. 후손 정규영이 겨우 <여유당집>만을 서궤에 넣어 탈출해서 다산의 묘역에 올라 대성통곡 했다는 후일담이 다산 기념관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하천의 역사에서 악명 높은 을축년 대홍수는 가히 20세기 최악의 대홍수로 기억되고 있다. 장마철의 끝물인 7월 초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한강 이남의 낙동강·금강·만경강 유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 이어지는 2차 홍수로 한강 유역의 영등포·용산·뚝섬·마포·신설동 등지가 침수되었다. 8월엔 청천강과 압록강 일대에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또 한 차례 태풍이 영호남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국가기록원 자료참조) 

도당제를 지내는 두물머리 느티나무
광동습지공원

여름날 사람들에게 무성한 녹음과 시원한 그늘을 주는 최고의 나무는 누가 뭐래도 느티나무다. 팔당호 최고의 느티나무는 양수리(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에 살고 있다. 나무와 수변풍경이 잘 어울리고 운치 있다. 예부터 느티나무는 나무로 들어찬 숲이 아닌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주민들과 사는 나무다. 또한 은행나무와 함께 병충을 잘 타지 않아 오래 사는 장수목이기도 하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또한 400살이 넘은 노거수다. 

 

이 나무는 마을 주민들의 숭배를 받는 성황목이기도 하다. 매년 10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한 도당제를 지낸다. 또한 정자목이라 하여 동네 주민들에게 그늘을 내려주는 쉼터가 되어준다. 나무아래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이 무척 상쾌하다. 나무 앞 물가엔 옛 돛단배가 떠있는데 전시용으로 실제로 운행하지는 않는다. 과거 작은 어선들이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지만 인근에 팔당댐이 생기면서 수몰되었다. 


팔당호와 경안천이 만나는 지역에 조성한 광동습지공원(광주시 퇴촌면 광동리)도 빼놓을 수 없다. 팔당호 상수원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갈대, 부들 등의 수변식물을 이용해 수질을 개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광동하수처리장에서 나온 물을 한 번 더 수질을 정화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끼처럼 물에 떠있으면서 수질을 향상시키는 '마름'이라는 수생식물도 알게 됐다. 인공습지는 하천의 정화기능 외에도 시민들의 생태관찰이나 휴식공간이 되어주는 요긴한 공간이다. 


왕실 그릇의 역사와 붕어찜을 맛볼 수 있는 마을 분원리

분원리 백자자료관

강변마을 분원리(광주시 남종면)에는 분원백자자료관이 있어 들어가 보게 된다. 이 동네는 과거 조선 왕실과 궁궐에서 쓰이는 음식 그릇용 백자를 굽던 곳이다. 조선인들은 ‘백의(白衣)의 민족’이라 불릴 정도로 흰옷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릇도 흰색을 좋아했다. 궁궐에 필요한 음식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사옹원'이 관할하는 '사옹원 분원 백자 번조소(그릇공방)'가 동네에 있었고 약칭으로 '분원'이라 불렀다. 


이 명칭이 마을 지명 분원리로 정착되었다. 광주에만 백자를 굽는 가마터가 340개소에 이를 정도로 광주 땅 전체가 분원이었는데, 번조소가 분원리에 정착한 것은 도자기를 굽기 위한 땔감과 흙을 운반하기 좋은 지리적 요건 때문이었다. 


분원리의 가마터에서는 20세기 초 한일병합 때까지 무려 150여 년간 숱한 걸작 백자들을 양산했다.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동양의 도자기로는 처음으로 824만 달러(85억원)에 낙찰된 ‘철화백자용문호(鐵畵白磁龍文壺)’는 바로 이곳이 출생지다. 분원은 1884년 민간에 넘어간 뒤 1920년대 일본 사기에 밀려 문을 닫았다. 이후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가 2001년부터 2002년에 실시한 조선백자 가마터 발굴을 계기로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철화백자용문호에서 보듯 이 땅의 도자기는 중국이나 일본에 견주어 예술성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쉽게도 조선의 도자기는 왕실이나 상류층의 전유물로 머물렀지만, 일본은 대중화·상업화로 성장하면서 중국의 도자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유럽에 수출을 하게 되었고 근대화의 근간이 되는 막대한 국부를 쌓게 된다. 

붕어찜

분원리는 예전부터 물이 맑고 깨끗해서 붕어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붕어가 인기가 없는 생선이었으나 매콤한 붕어찜으로 마을사람들이 자주 해 먹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붕어찜 식당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붕어찜은 오래 전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여름철 보양식 중 하나로 유명하다. 


분원마을 붕어찜은 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잘박한 양념국물이 있어 붕어의 비린내를 잡아주는 것이 특징이다. 1976년 붕어찜 조리법이 경기도 향토지적재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어느 식당 간판에서 향수어린 음식 ‘어죽’을 발견했다. 여러 생선을 푹 고아서 발라낸 살과 국물에 야채와 쌀, 수제비를 떼어 넣고 끓인 죽이다. 지금은 별미 음식이지만, 별다른 보양식이 없던 시절 하천변에 살던 사람들에게 어죽은 좋은 먹거리였다. 민물고기를 끓인 것이지만 전혀 비리지 않다. 


안양천이 흐르는 천변 동네 목동에 살던 어릴 시절, 이맘때면 동네주민들이 물이 불어난 하천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만들어 함께 먹곤 했다. 이런 일을 ‘천렵(川獵)’이라 한다는 걸 어른이 된 후에 알게 됐다. 더위를 피해 냇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음식을 먹고 물놀이를 즐기는 민간의 오래된 놀이다. 


팔당호로 수몰된 마을 우천리의 손짓, 소내섬

우천리가 나오는 정선의 그림
수몰된 마을 우천리의 흔적 소내섬

팔당댐이 생기면서 수몰되어 사라진 우천리(광주시 남종면)는 아름다운 강변마을로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작품집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도 나온다. 경교명승첩은 서울 근교와 한강변의 명승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와 인물화로 구성된 정선의 그림이다. 이 마을을 품고 흐르던 물길은 팔당댐이 들어서기 전엔 경안천 하류 지역으로, 겸재의 그림 우측상단에서 적혀있듯 조선시대엔 소내 또는 우천(牛川)으로 불렀다고 한다. 


나루터와 우시장이 있었던 우천리는 마치 마을을 잊지 말아 달라는 듯 호수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데 바로 소내섬이라 불리는 작은 갈대섬이다. 


소내섬과 주변 호수풍경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 팔당 전망대다. 아름다운 팔당호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떠 있는 소내섬과 팔당댐, 예봉산을 비롯해 다산유적지와 족자도 그리고 아스라이 보이는 두물머리 풍경까지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한다. 경기도 수자원본부 9층에 위치한 전망대는 마치 분위기 좋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다. 분원리에서 한양까지 왕실 도자기를 운송했다는 황포돛배 모형과 우천리 마을의 옛 나루터 모습, 팔당호의 역사 등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 


물안개가 자주 피어올라 이름 지은 팔당물안개공원(광주시 남종면 귀여리)은 귀여섬이라는 재밌는 이름을 지닌 작은 섬에 자리한 수변공원이다. 4대강 개발사업시 섬을 정비해 조성한 공원으로 자전거, 전동카트 대여소가 있어 자전거를 타고 공원과 구름다리로 이어진 섬을 돌아볼 수 있다. 섬 내에는 산책길·코스모스길·시민의숲·희망의숲·중앙광장이 자리 잡고 있다. 어스름하게 동이 트는 풍경 강변 너머로 신비로우면서도 영롱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팔당호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다. 

팔당물안개공원이 된 귀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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