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그저 부동산으로 생각하고, 누군가는 잠만 자는 곳, 누군가는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을 떠올릴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 집은 보금자리 곧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아버지의 긴 투병생활은 병원과 집에서 계속되었다. 우리 집은 큰 사건이나 사고 없이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는데 아버지가 아프시고 난 뒤로 집안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핸드폰 진동모드는 늘 해제상태, 벨소리 크기는 최대. 사소하지만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투병 중에도 유쾌했다. 라디오를 켜놓고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면 따라 부르고, TV프로그램을 보며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곳곳을 청소하는 나를 보며 다 컸다며 기특해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어느 날. 새벽 다섯 시쯤, 급하게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깨어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위급한 상황이었고 119에 전화를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곧 119 구조대가 도착했다. 벌써 여러 번 올라탔던 구급차인데도 낯설었다. 구급차를 타고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캄캄한 새벽의 도로를 달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아버지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겁이 났다. 문을 열면 그날의 악몽이 눈앞에서 재현되었다. 안방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 아버지의 잔상들이 남아있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는데 몇 달 뒤에도 그 몇 달 뒤에도 여전히 안방을 들여다보면 악몽 같던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엄마, 이사를 가야겠어. 이 집에서 더 이상은 못살아"
"..."
"어떻게 생각해?"
"너 좋을 대로 해"
훗날 어머니께 여쭤보았는데 당시에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이사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이나 끝을 모르고 치솟는 집값이나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한번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끝을 보는 성격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허락과 동시에 집을 내놓았다.
바로 집이 팔렸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은 1년 하고도 몇 개월 뒤에야 정리가 되었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제각각이었다. 집을 내놓고 첫 번째로 방문했던 노부부는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값이 얼마인지 몇 평인지 자랑을 늘어놓으며 우리 집을 폄하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집을 둘러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중년 여성은 마음에 드는 것처럼 말하고선 연락이 없었다. 그 뒤로도 별별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온다고 하면 기대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연락이 없으면 바닥으로 꺼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한 가지 뿌듯한 점은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집이 참 깨끗하네요."하고 한 마디씩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나의 분노가 차게 식는 건 아니었지만.
집이 팔리기로 결정이 된 후에 이사 갈 집을 찾는 건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이사 가기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다.
누군가는 그래도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집이어서 아쉽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살던 주택을 팔고, 낡은 빌라로 이사를 온 상태였다. 이 낡은 빌라에서 아버지의 본격적인 투병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좋은 기억이 없었다. 어떠한 미련도 남아있지 않기에 이사를 가는 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입주청소를 할 생각에 신이 났다. 다이소에서 청소용품을 잔뜩 구매해서 퇴근하고 틈틈이 2박 3일 동안 청소를 했다.
봄,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 벚꽃엔딩이 들려오는 시기(장범준 씨 부럽습니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했다. 불안과의 이별도 점점 가까워져 갔다.
작가의 말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