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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Aug 07. 2023

여름에는 소나무의 푸르름을 모른다.

혹독한 겨울을 버텨낸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푸른 새싹들이 새롭게 돋아나는 봄을 지나 마침내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이 오면 겨울 내내 푸른빛을 뽐내던 소나무도 녹음(綠陰) 속에 묻힌다. 아버지는 그런 소나무를 보며 사람들이 여름에는 소나무의 푸르름을 모른다고 늘 말씀하셨다. 


나의 짙은 눈썹과 휘어져 올라가는 눈꼬리는 아버지를 닮았다. 하얗지만 연약한 피부도 아버지를 닮았다. 책을 좋아하고, 기록에 집착하는 것도 아버지를 닮았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성격까지도 꼭 빼닮았다고 한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3일 내내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볼 때면 어김없이 속으로 돼 내었다. 


'이렇게 닮은 자식을 두고 그렇게 빨리 가버리다니'

'이렇게나 닮았는데'


그럴 때마다 슬퍼졌다. 이렇게 닮은 자식을 두고 가는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어서 마음이 미어졌다가도 일찍 가버린 게 원망스러웠다. 납골당에 부모님의 다정한 사진 한 장과 아버지와 나의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액자에 담아 넣어두기로 했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담긴 모습이 찍힌 사진을 한참 고르면서 많이 힘들었다. 또다시 '이렇게 닮은 나를 두고 가다니' 그 생각을 들 때마다 아버지가 야속했다. 겨우 고른 사진 한 장은 아버지가 비행기를 태워주는 사진이었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시간이지만 아버지에게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특별한 존재였다. 세상을 가르쳐주고, 생의 많은 갈림길에서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 걷는 방법까지 가르쳐준 분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에게 여쭤보았다.


"아빠, 나는 빨리 늙고 싶어. 나이가 많으면 고민이 적어지지 않을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고민이 없을 것 같아서?"

"응, 나이가 많으면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까 고민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아."

"나이가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고민이 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단순한 이치인데 20대 초반인 나에게는 아주 큰 울림이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걸 보면 그때 아버지가 마치 세상의 모든 길을 깨달은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늘 내게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하며, 좁은 시야를 갖고 살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독서를 좋아하셨다. 가난으로 인해 배움은 짧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이 끝이 없었다. 어느덧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서점에서 중학생이 볼 만한 자기계발서를 사다 주셨다. 그 외에도 내게 필요해 보이는 책이면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그중에서도 아버지는 '연탄길'이라는 책을 좋아하셨다. 세상의 따뜻한 이야기를 엮은 책인데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는 부분이면 내게 알려주시며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내가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한여름의 녹음(綠陰) 속 소나무를 바라보며 아버지를 떠올린다. 

올해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년째,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듯이. 



작가의 말

1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에 발행되는 글부터는 불안을 극복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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