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뭐냐는 말을 매일같이 듣던 때가 있었다. 만나는 친척 어른들, 학교 선생님, 친구들 모두 나에게 꿈을 물어보던 때. 그때 난 거리낌없이 그 질문에 답했다. 저는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 되고 싶어요, 글을 쓰며 현장을 누비는 기자도요. 소설가, 외교관도 되고 싶어요. 생각해보니 교수님도 되고 싶네요.
그당시 나는 내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참 많이 했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까? 나에겐 어떤 직업이 맞을까? 내가 과연 한가지 일만 계속 하며 살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직업들을 준비해볼까? 머릿속에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미래의 내모습을 그려보는 건 마냥 즐거운 일이었다. 이 넓은 세상은 내게 드넓은 기회의 바다와도 같았다.
그 행복한 상상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아이였던 내가 어른이 되면서부터였다. 좋은 학교를 졸업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어른'이 되었다. 꿈과 상상이 아닌, 지금의 현실에서 나의 자리를 찾고 지켜내야 하는 어른. 나는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새로 도전해보고 싶은 꿈이 많았다. 그 꿈들을 상상하며 하나씩 이뤄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더이상 꿈을 묻지 않았다. 모두가 ‘넌 이제 네 길을 잘 찾았으니 잘 성장만 하면 되겠네’라며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
점심시간동안 짬내서 독서를 하면 ‘일이 적은거야, 시간이 많은거야?’라는 핀잔이 돌아오는 일상. 출퇴근 시간, 버스 안에서 자기계발을 하면서도 행여나 회사 사람들이 볼까봐 뻐끔뻐끔 눈치를 봐야하는 일상. 이 삭막한 경쟁의 한복판에서 나의 꿈꾸는 기쁨은 사라져간다. 이젠 내 자신조차도 스스로에게 꿈을 묻지 않는다.
"사실 나는 진짜 하고 싶은 꿈이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마냥 그 꿈만 좇을 순 없는 처지라, 대학 졸업하고 첫회사를 다니면서 주말마다 열심히 시험을 공부했죠. 그런데 그게 참 몇 년을 노력해도 안되더라. 서른살 마지막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나서 미련없이 그 꿈을 포기했어요. 이제 됐다. 그만하자. 마음은 내려놨는데, 막상 그 꿈이 없어지니까 뭘 해야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될대로 되란 심정으로 다니던 그 때 다니던 회사를 때려쳤지. 그리고 하고싶은 일을 찾아 커리어를 돌고 돌았어요. 그런데 결국은 지금 또 여기, 회사원인거야. 회사원이 내 꿈인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말예요."
친한 동료와 함께한 점심시간. 오전 내내 과도한 일에 파묻혀 화장실도 못가고 일만 하던 나는 동료에게 하소연을 했다. 아니, 왜 어른을 위한 직업상담소는 없는거예요? 죽어라 머리 싸매고 보고서만 쓰다보니 어느 순간 확 다 내려놓고 싶어져. 이건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거든요. 안되더라도 하고 싶은 꿈에 도전은 하고 죽고 싶은데, 나는 아직 젊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일하면서 시간만 보내다 보니까 이젠 나조차도 내 꿈이 뭔지 모르겠어. 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요, 과장님?
"에이. 그래도 제 눈에는 그것마저 대단해보이는데요?" 그녀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여러 명 싸움만 붙이는 이 회사에서 죽도록 일하면서 미래와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어디예요. 우리 팀 사람들 봐봐요. 몸이랑 마음이랑 가족관계랑 전부 다 망가져가는데 목적도 잃은 채 시키는 일에 죽어라 목숨걸잖아. 그와중에 스스로 하고싶은 일이 뭔지 고민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내가 과장님 좋아하는 이유잖아 그게."
늦은 퇴근길.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주변을 보면 그렇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결국 돌고돌아 원하는 꿈을 이루러 가더라구요. 우리도 그렇게 계속 하고싶은 일을 찾아가면서 생동감있게 살자구요. 해야하는 일에만 치여살다 한번 뿐인 인생 후회하지 말고." 그래.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막말로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건 아니잖아?
누군가는 꿈같은 직장에서 평생을 바치며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반면 누군가는 계속 다른 일에 도전하며 자신의 꿈과 재능을 새로이 발견한다. 회사원이었다가 방송사 피디였다가 치과의사가 되고, 은행원, 외항사 승무원을 거쳐 변호사가 되며, 대기업 과장이었다가 스타트업 대표가 된다.
옳고 그름은 없다. 자신의 성향과 뜻에 따라 살면 그것이 각자 만들어내는 답일 뿐. 그러니 나 또한 내가 원하는 꿈을 새로 찾아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면 된다.
오랜만에 나의 2020년 다이어리를 펼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과 나를 괴롭게 하는 일을 쭉 적어본다. 아직은 희미하고 잘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스스로에게 계속 묻다보면 내 맘속에 깃들어있는 꿈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따라 나는 계속 새롭게 도전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자. 그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자. 살아있는 동안 늘 꿈꾸자. 그게 직업이 됐든 취미가 됐든, 꼭 이루자.
누군가에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들을 나이는 지났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에게 계속해 꿈을 물을 차례다.
아직 내 꿈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