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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칵테일 Jul 27. 2020

마마보이이자 마초였던 전 남친

마초와 마마보이는 한 인격에 공존하기 어려울까? 아니었다. 정반대인 듯한 이 두 가지 인격의 케미는 의외로 환상적이다.


20대 초반에 3년 정도 사귄 X. 준수한 외모, 군대에서 헬스로 단련한 탄탄한 몸을 보고 반했다. 더군다나 군대 휴가를 나와서도 저녁 9시면 엄마 카페 마감을 도와야 한다며 자리를 뜨던 효성도 맘에 들었다. 잘 생긴 데다 예의까지 바른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끈질긴 구애 끝에 우리는 연인이 됐다.


하지만 환상적이었던 X의 모습은 금방 산산이 조각났다. 남친의 효성은 나를 수시로 놀라게 했다. 사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이다. X는 데이트에 부모님을 모셔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 한복판에서 남친 부모님을 상대하는 건 여간 진땀 나는 일이 아니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인천에 있는 엄마 카페에 나를 보냈다. 혼자 계시는 엄마가 불쌍하다는 이유였다. 연예 초, 사랑이 샘솟던 때라 남친의 말대로 인천까지 출장 가 그의 엄마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늘 인천에서 온종일 있느라 너무 힘들었어.”

“뭐가 힘들어? 엄마가 밥도 사주고 좋은 곳도 데려가 주셨을 텐데.”


순진하게도 나는 이때까지 효심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경악을 금치 못 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버이날 선물로 엄마랑 엄마 침대에서 자기로 했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선물인 거 같아.”


분명 X는 수시로 엄마를 위로하고,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 강박은 남친을 마초로 만들었다. 여자는 남자 보다 잘나면 안 된다는 식의 태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X의 엄마는 늘 “우리 아들이 최고야”라고 말했고, 나는 묵묵히 동조했다. 그 역시 본인이 항상 최고라고 여겼다. 그래서 내가 자신보다 좀 저 뛰어난 능력을 보일 때 화를 내곤 했다. 내가 본인보다 좋은 학점을 받았을 때, 과외&공모전으로 대학생 치고 많은 돈을 벌었을 때 열등감을 드러냈다. 나는 그에게 little mommy 같은 존재였다. 늘 그의 이야기에 동조하고, 그를 치켜세워야 했다.


어버이날 선물로 엄마와 잔다고 했을 때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정말 이상하지 않아? 이 정도면 마마보이 아니야?”


그는 휴대폰을 벽에 내던졌고 액정이 박살 났다. 불현듯 X는 엄마에게는 마마보이, 나뿐만이 아닌 모든 여자 친구에게 마초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지만, 자신의 무능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자라는 이유에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다. X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아들이 어머니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에 근거한 생각ㆍ원망ㆍ감정의 복합체.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는 경향)에 시달렸다는 걸. 엄마에게 자상하지 않은 아빠를 늘 증오했다. 그런 아빠에게서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마마보이이자 마초가 된 거 같았다.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을까. 남자다운 강한 힘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남자라면 최고의 자리에 한번 올라 봐야지.”


명문대생이었던 그는 제대 이후 신흥 종교에 빠져들었다. 교주는 자신이 10여 개의 대학을 졸업했으며 수많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본인을 박사이자, 교주이자, 목사이자, 교수이자, 멘토라고 칭했다. 연애, 결혼, 취직까지 올인원으로 해결해 준다는 곳이었다. 불안한 젊은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악질단체였다. 입회비를 내고 가입한 후 유사 가죽으로 만든 팔찌 따위의 물건을 비싼 가격으로 팔았다.


X는 이별의 순간까지도 그 단체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어떤 말로도 그를 설득할 수 없었다. X는 모든 친구와 연락을 끊고 여전히 그곳에서 생활한다. 정말 연애, 결혼, 취직까지 모두 해결해 준다는 말을 믿는 거 같다.


시간이 지나 X를 떠올린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어머니의 기대, 어린 나이에 혼자 짊어지고 갈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건 아닐까. 현실에 맞서기 위해 마마보이이자 마초가 되어야 했던 걸까. 아마 그 단체는 삶이 힘든 그의 현실 도피처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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