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이정 Aug 05. 2019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영화: 김복동 (2019, 송원근 감독)

"그 소식을 들으셨을 때 뭐하고 계셨어요?"


  참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음모론을 다룬 책에서 본 질문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이소룡 같은 유명인의 죽음에 더덕더덕 붙는 음모론을 모아둔 그런 책. 가벼운 마음으로, 흥미롭게 팔랑팔랑 넘기고 있는데, "케네디 피살 소식을 들었을 때 무얼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뭐라고 대답했는지가 쓰여있는 것이다. 아직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케네디가 죽은 게 언제 적인데,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기억해? 그러나 2014년 4월 16일에 알게 되었다. 이따금 어떤 소식은 (특히 비극은) 화살처럼 날아와 그 소식을 듣는 순간의 나를 고스란히 박제한다는 것을. 그런 순간은 시간이 흘러도 그 날의 상황과 감정, 공기와 옷자락까지도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2015년 12월 28일도 그런 날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평생 보고 산 설경이 새삼스레 낯설던 때였다. 그 겨울이 내게 그토록 춥고 쓸쓸하게 기억된 데에는 그 졸속 합의 때문도 있을 것이다. 이 돈 줄 테니 소녀상 철거하고 다시는 말 꺼내지 말라고밖엔 들리지 않는 합의문이 대뜸 발표되었고, 불가역적이라는 말이 낙인처럼 우리에게 찍혔다. 솔직히 나는 다 망했다고, 이 문제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 가지고 첨예한 싸움을 하는 판에서, 저렇게 당당한 네 글자를 찍어놓고 우리가 다시 이 일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당연히 분위기는 험악하고도 참담했다. 외교부 차관이란 자가 뭐라도 하는 꼴을 보여야겠던지, 할머니들을 만나러 들어갔다. <아이 캔 스피크>의 실화 주인공이기도 하고, 추후 트럼프 대통령을 와락 안아서 화제가 되기도 할 이용수 할머니는 외교부 차관이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버럭 소리를 쳤다. 우리가 만만하냐, 우리를 뭘로 보는 거냐고. 그리고 그 뒤에, 소파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힘 있게 조목조목 말씀하시는 김복동 할머니가 있었다. (이 장면은 영화에 나온다.)


  김복동 할머니가 있었다.

  먼발치서 톺아보며 이 싸움은 다 끝났다고 고개를 젓던 나와 달리, 당사자인 그는 날로 졸렬해지는 싸움 판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


김복동 (1926-2019)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그리고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가 김복동이기 이전에, 한 노인인 김복동의 공간을 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하고 끝난다. 가지런히 정리된 약봉지며 지금도 반짝이고 있는 시계 같은 것들. 옥색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방에 앉아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가지런히 빗는 모습. 공간만 보아도 성격이 보인다. 세면대는 물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고, 패물은 함에 정갈하게 담겨 있다. 머리가 잘 빗겼는가, 묻고 길을 나서면 어느새 인권운동가의 얼굴이다.



  이 영화를 포스터로 처음 접했는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보다 인권운동가라는 점을 먼저 적어둔 것이 눈에 띄었다. 김복동이라는 인간이 선택한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휩쓸려갔던 삶보다 앞에 세웠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김복동은 처음 용기를 낸 그 순간 이후로 꾸준히 스스로가 피해자임을 증언해왔고, 역설적으로 그러함으로써 피해자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 나섰다.



  다부지고 강한 마음이지만, 무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김복동은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애당초 군인들의 면면, 일본 제국주의의 민낯을 많이 접한 그다. 일본이 해결을 해주겠냐며, 해줄 거였으면 진작 해줬을 거라고 말하는 얼굴은 이미 이 싸움의 키를 모두 아는 얼굴이다. 아마도 일본은 끝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런 식으로 이 모든 일이 과거로 묻히길 바라며 숨 죽인 채 시뻘건 눈총을 쏘는 이들이 있다.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싸움을 계속한다.


  열매를 따 거두는 싸움이 아니라 씨앗을 심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나이 여든에 할머니가 고향 양산도 살아온 부산도 두고 올라온 것은, 그 동생의 말에 의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 우리나라 여성들이 그런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김복동은 소녀상 제막식에서 일본 대사관을 향해 외친다. 평화로 가는 길이 열렸으니 나와서 사과하라고. 용서를 빌면 받아줄 준비가 얼마든지 되어 있지만 1,000번이 넘는 수요일이 차곡차곡 쌓이도록 상대는 용서를 빌 마음이 없다. 김복동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평화상을 하나씩 세운다. 평화를 기억하자는 목소리를 촛불처럼 밝힌다.


  <미생>에 그런 말이 나온다. 순류를 유지하는 것이 상대의 입장에선 역류가 된다고. 소녀상을 세우고, 평화를 위한 길을 내는 이들에게, 상대는 돈을 들이대면서 돈을 밝히는 사람 취급을 하고, 소녀상을 지키려는 이들을 끌어내고,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합의문에 협잡꾼들만의 도장을 찍었다. 그 도장에는 불가역적, 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김복동의 뒤를 잇는 이들은 상황을 똑똑하게 보고 말한다. 이들의 인터뷰도 영화에 꼼꼼하게 들어있는데, 이들은 화해·치유 재단이라 하지만 이것이 '화해'라는 말로 눙칠 수 있는 관계인지 의문을 던진다. 기실 맞는 말이다. 소녀상이 걸어 나와서 주먹을 날리거나 폭탄을 던질 것도 아닌데, 트로이의 목마처럼 그 안에 칼 든 사람을 숨겨둘 것도 아닌데, 가만히 앉아있을 뿐인 저 소녀상이 뭐가 그리 두려울까.


  진실의 입에 손을 넣기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한 자일 것이다. 거짓말하지 않은 자는 진실의 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소녀상을 두려워하고, 꼴 보기 싫어하는 자들은 전시 여성을 향한 폭력 앞에 떳떳하지 못한 자들이다. 전쟁을 벌인 자들이거나 아니면 여성과 다른 약자들을 향한 폭력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자들이거나.


영화에도 나오는 김샘 씨는 소녀상을 지키려다 (전) 정부에게 기소를 당한 바 있다.


  온통 추악한 이들이 여기서 치고 저기서 친다. 일본만 치면 억울하지도 않겠는데, 우리 쪽에서도 쳐댄다. 외교부 차관이 와서 헛소리하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얼마 전에 소녀상을 욕보이고, 고소한다니까 그제야 두려워 무릎 꿇은 한심한 인간들도 있었다. 졸속 합의에 반대해서 엉엉 울면서 스크럼을 짜고 맞는 말만 외쳐대는 것은 모두 젊은 여성들이었고, 울면서 소리치는 외의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이들을 공권력이 끌어냈다. 그 자리에서 집행을 해야만 했던 이들에게는 무슨 잘못이 있겠냐만, 상황 자체가 피해자 입장에선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속 터지는 일인가.


    그럼에도 김복동은 웃으면서 유쾌하게 이 싸움을 계속해 왔다. 어린것들 잡아가지 말고 잡아갈 거면 나를 잡아가라고, 어린 학생들의 안위까지 살피며.


  그뿐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차별과 혐한 범죄 표적이 되곤 하는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김복동은 장학금을 준비하고, 직접 가서 학생들을 만나며 격려한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터지는 이유는, 아마 적진 한가운데서 사는 느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 사는 모든 한국인들이 다 차별받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본인들도 분명 많겠지만, 재일 조선학교만큼은 분명히 적진 한가운데 있는 게 맞다. 힘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 부지런히 공부하라며 웃는 얼굴은, 옛 소설 속에 나오는 왕할머니 모습이다. 가문의 경외를 한 몸에 받는, 서릿발 같은 한편으로 어린것들을 담담히 품어주시는 그런 왕할머니.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사람들도 만나고, 대학생들도 만나고, 어디와 달리 전범국의 과거를 깔끔하게 청산하려 노력해온 독일에 가서까지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 또 호쾌하게 웃으며 할 말을 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콩고와 우간다의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서도, 베트남전의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그는 목소리를 냈고 주머니를 열었고 힘을 보냈다. 그러나 그 뒤에서는 갈수록 안 좋아지는 몸의 무게를 느끼며 삶을 정리해 가는 노인이 있다.

  

  김복동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꽃 피고 잎 피던" 사월 깊은 밤 태어났다 한다. 밤에 태어난 범띠이니 활동성이 얼마나 좋겠느냐며 주변에서 농담을 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농담이다. 밤중의 호랑이처럼 김복동도 정확하게 보고 조준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복동의 인권운동은 기억할 만하다. 훌륭한 인권운동가이자 따뜻한 인간의 이면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그가 그리워진다.



  영화를 보면서 최근에 읽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라는 책을 떠올렸다. 김숨의 소설이기는 하나, 그 띠지에는 김복동 증언집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오랜 기억부터 한숨처럼 날리던 생각들까지 소설의 모양새로 풀어져 있다. 이 영화가 인권운동가 김복동의 따스한 강인함을 조명했다면 이 책은 퇴근한 인권운동가의 뒷모습을, 그리고 거기서 내뿜는 담배 연기를 닮아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았더니 옷자락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제비꽃색 옷자락 흩날리고 이 세상을 떠났다. 먼저 간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마지막으로 집을 한 바퀴 돌 때 김복동은 편안히 쉬라는 말보다 그곳에서 이 싸움을 도와주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영화가 한지민의 따스한 목소리를 빌어 관객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도 동일하다. 이 싸움을 함께 하겠냐는 질문. 다소 호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문장이지만 사실 이 문장은 평화로 가는 길에 함께하겠냐는 초청이다. 소녀상을 없애고 기억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인간들은 지금도 여전히 모욕을 일삼고 있고,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김복동이라는 인간이 존재로서 남긴 초청에 응할 때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