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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Mar 14. 2021

이야기는 무명을 닮아

넷플릭스 <시타라:렛 걸스 드림>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비단을 닮아 너울너울 펼쳐지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안쪽에서 무명의 맛이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다. 기계의 무미건조하고 편리한 손이 닿지 않은, 그러나 너무 바빴던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있는 천. 화려하지도 광택이 돌지도 않지만, 잔잔한 힘으로 기억에 남는 천.


황정은의 <연년세세>에서는 "싸늘한 무명. 소색素色 실로 짠 그물 같은 맛."이라고 표현했다. 눈 속에 처박혀서, 눈의 맛이 무명의 맛과 닮았다고 생각할 때 나온 문장이었다. 읽는 순간 입 안에 무명이, 그것을 꽉 깨물 때 입안의 아릿한 감각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무명에는 그런 감각이 있다. 어쩐지 서러운, 손끝을 아무리 바삐 놀려도 닿지 않는 감각이.


무명 천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어쩐지 무명을 떠오르게 한 이야기가 있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있는 15분짜리 무성 애니메이션, <시타라:렛 걸스 드림>이다.



곳곳에서 연이 날아다니는 동네, 옥상에 앉아 종이비행기를 접는 두 자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신문지를 정확한 손길로 접어, 종이비행기를 만들고 있다. 가르듯 눌러 접은 신문지에서 주부 칼럼이 같이 쓱 접힌다.


멀리 간 것도 아니고 고작 집 옥상에 올라갔을 뿐인데, 아버지가 돌아오실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긴장을 하고 조심스레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에게 옥상은 꿈의 공간이다. 하늘을 바라보고 비행기를 갖고 놀며 미래를 그려보는 공간. 눈치 보는 이유도 그래서다. 여자아이들이 차단당하는 곳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꿈을 숨길 수는 없어서, 집안에 들어와도 곳곳에 향기처럼 배어 있다. 방안 가득 비행기다. 비행기에 관한 책, 거기 깔려 있던 종이비행기, 비행기 모형 장난감, 침대 맡에 붙어있는 'BORN TO FLY HIGH'라는 문구의 엽서. 두 아이가 어떤 공간을 동경하는지 금방 드러난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 손에는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하나씩 나누어 먹는 스위트 한 박스가 들려 있다. 아버지는 가족들 입에 하나씩 물려줄 참이었으나, 어머니는 심드렁한 태도를 가장해 거절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 이유는 머지않아 드러난다. 아버지가 밝은 얼굴로 언니에게 금색과 붉은색으로 뒤덮인 구두를 보여줄 때. 동생은 그 화려한 모양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지만, 의미를 정확히 아는 어머니의 눈망울은 무거워진다.


붉은색과 금색. 그건 신부의 색깔이다. 화려한 색과 문양으로 이루어진 사리를 입고, 천을 뒤집어쓰고, 구두를 신는다. 그뿐 아니라 양 팔 가득 메헨디(헤나)로 복잡한 문양을 그려야 한다.


<시타라> 속 어머니도 무거운 눈망울을 하고 딸의 팔 위에 남편과의 오랜 사랑을 상징하는 메헨디를 그려낸다. 아직 다 익지도 않은 푸른 꿈을 가득 안고 있는 딸에게 만나보지도 못한 남편과의 사랑을 기원하는 의미를 새겨 넣는다. 눈망울은 더욱 무거워진다.



붉은색은 사랑과 화합을 의미한다. 힌두교의 두르가 여신을 상징하는 색이라, 여성이 갖는 내면의 힘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상서로운 순간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여성의 삶에서 가장 상서로운 순간이 결혼이라는 의미를 엄중하게 담은 색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기쁨이고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원하지도 꿈꾸지도 않다가 이 날을 갑작스레 맞아버린 어떤 이들에게는, 이 모든 의미가 그저 비극 앞에 두른 얇은 가림막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 주인공에게도 그렇다. 아빠와 비슷한 연배의, 처음 보는 남자에게 남은 일생을 내걸게 됐다. 이걸 결혼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결혼보다 차라리 저당 잡히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수많은 아이들이 신부가 되고 그들의 꿈은 절대 날지 못한다는 현실을 똑똑히 응시하며, 마음에 작은 파장을 던지고 15분을 마무리한다. 짧고 대사도 없지만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게다가 절망만으로 끝마치지는 않는다. 다음 세대의 남성인 남동생은 늦게나마 어깨 위의 아버지 손을 거절하고, 막냇동생 손에서는 학교에서 쓸 법한 노트로 만든 종이비행기가 날아오른다. 아마도 그의 생애는 조금 다를 거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며.




슬프게도 그 기대는 여전히 기대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 이야기의 배경은 1970년대 파키스탄이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여자아이들의 조혼이 비일비재하다. 조혼早婚이란 용어도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영어 그대로 'child marriage', 아동 조혼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또한 완벽하지는 않다. 이른 나이의 결혼이라는 말 그 어디에도 성별이 내재되어 있지 않지만, 현실에서 조혼의 피해자는 절대다수가 여성이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화를 피해 보겠다고 어린아이들을 서둘러 조혼시켰던 구한말의 '조혼'이라면 모를까. 한 명은 성인이고 한 명은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아이라면, '조혼'이라는 표현만으로는 그 음험한 느낌을 다 담을 수 없다.



세상은 분명 점점 더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한참 더 좋아져야 한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우리는 많은 뒷걸음질을 쳤다. 많은 국가에서 학교 운영을 중단했고, 그건 교육의 공백 그 이상의 의미였다. 아동학대, 성 착취, 아동노동, 조혼 같은 아동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쉬운 것이다. 실제로 조혼과 임신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룻밤 금색과 붉은색으로 화려한 옷을 입히고, 그 이후로 사리 천에 땀과 눈물을 훔치며 살아가게 만든다면 그 붉은색을 상서로운 색이라 부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 말마따나 타의로 끊긴 피륙은 무명도 비단이 된다지만, 무명조차 끊긴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 시타라Sitara는 별이라는 뜻이다. 부디 인류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숨통을 막는 대신, 마음마다 떠오른 별이 충분히 무르익어갈 시간과 자리를 내어주기를. 별 하늘 아래 차분하게 행복해할 수 있는 유년시절을 지켜주기를. 이 작품은 15분의 러닝타임 바깥에서 완결지어져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시타라- 한때 내가 잡고 있었지만 놓쳐버린 아이들의 손을 생각하며, 멀리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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