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봄이 지나간다

오사카에서의 일기

by 박선희

오늘 아침엔 걷다 보니 손톱만 하던 은행잎들이 손바닥만 하게 자라 있었다. 봄 안에서도 계절이 흐른다. ‘봄’이란 이름으로 멈춰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은 무언가를 키워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란 것들은 반드시 사라진다. 태어나고 자라고 사라지는 이 모든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것들은 태어나고 많은 것들은 자라고 태어난 이상 반드시 사라지는 것들. 은행잎은 점점 자라나고 철쭉은 점점 시들고 벚꽃은 이미 사라졌고 내가 돌보고 있는 화분 중 가장 작은 것에서는 며칠 전에 새로운 싹이 돋아났다. 그 모양을 보니 원래 그 화분에서 키우던 잎과는 좀 다르다. 아마 어딘가에서 날아온 씨앗이 운 좋게도 그곳에 자리를 잡았나 보다. 어떤 얼굴로 자라날까 궁금해하며 열심히 물을 주고 있다. 나 역시도 틀림없이 자라면서 사라지는 중이다. 사실은 모든 것들이 자라면서 사라지는 중이겠구나 생각하니 모두가 측은하고 어쩐지 서글프다.

오사카 벤텐초 우리 집 베란다를 밝혀 준 나의 식물 친구들

얼마 전엔 꽃 화분 몇 개와 토마토 화분 하나를 더 샀다. 세 개의 화분을 갖고 있었는데 물만 줘도 씩씩하게 자라는 벤자민과 달리 꽃 화분 둘은 어렵게 겨울을 났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 심각하게 시들었던 분홍꽃 화분에서 꽃대가 여섯 개나 올라오더니 하나도 빠짐없이 활짝 꽃을 피워냈다. 역시나 생명은 놀라워, 감탄하며 화분을 좀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호랑 둘이 가서 각자 마음에 드는 꽃을 두 개씩 고르고, 모종삽과 흙 두 포대, 몇 개의 커다란 화분을 사 가지고 와 꽃들을 이리저리 옮겨 심어주었다. 벤자민도 널찍한 화분으로 이사시켜 주었다. "그럼 꽃들도 이사하는 거야?"라고 말한 건 지호였다. 지호한테 많이 배운다. 마지막에 화분들에 물을 주는 일도 지호가 했다. 나는 흙이 잔뜩 묻은 까만 손톱들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는데 흙냄새가 참 좋았다. 여러 개의 화분들을 돌보자니 싱싱하고 예쁜 것보다 연약한 것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시든 꽃도 버리기 아까워서 꽂아두고는 예쁘다 예쁘다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걷고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이불을 털러 오가거나 빨래를 널러 베란다에 나갈 때, 그리고 그저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화사한 꽃들이 있으니 마음이 좋다. 꽃을 보고 있지 않을 때도 마음속 어딘가에 그 꽃들이 앉아있다.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건 그런 일이다. 마음에 자리를 내어주는 일. 집에 앉아서도 물끄러미 봄을 본다. 절반쯤의 봄을 지나고 있다.


* ‘오사카의 일기’는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오사카 벤텐초에 살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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