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버린을 흔들던 산타

오사카에서의 일기

by 박선희

심수봉의 비나리를 기가 막히게 부르던 명숙 씨는 신사이바시 시내에 작은 스낵바를 차렸었다. 지금은 사라진 명숙 씨네 스낵바. 그곳을 찾았던 어느 12월의 메모.


*명숙 씨네 스낵바에 아이짱이라고 부르는 아르바이트생이 있는데 진짜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작은 바에 의자는 아홉 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가라오케 기계가 있는 명숙 씨네 스낵바.


마흔셋의 아이짱은 티브이에 나오는 일본 사람처럼 하얗게 화장을 하고 속눈썹을 길게 붙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산타옷을 입고 모자까지 쓴 아이짱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명숙 씨네 스낵바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손님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맞춰 웃기지도 않는데 웃으며, 신나지도 않는데 신나게 탬버린을 흔든다. 아이짱은 매상도 올려야 해서 손님들이 따라주는 맥주를 열심히 마신다. 손님들이 신나게 놀 때는 맥주를 자기 잔에 슬쩍슬쩍 따라서 마신 후 빈 병을 내려놓고 새 맥주를 딴다. 더 이상 귀엽지 않은 나이이지만 그래도 귀여워야 하는 아이짱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코끝을 찡긋거리며 웃는다. 짙은 화장 덕분에 웃을 때마다 주름이 점점 선명해진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친구들과 나는 명숙 씨네 스낵바에 모였다. 노래를 부르고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나는 어쩐지 아이짱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마키노 상의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다가 아이짱을 보는데 아이짱의 산타 모자 밑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아이짱은 땀도 제대로 못 닦고 탬버린을 흔들기 바빴다. 나는 기다란 테이블 위를 눈으로 훑으며 티슈 곽을 찾았다. 마침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티슈 곽이 있길래 아이짱에게 티슈를 몇 장 뽑아 건넸더니 아이짱이 잠시 멈칫하다가 웃음이 걷힌 얼굴로 '아리가또'라고 말했다. 웃음기 사라진 아이짱의 얼굴은 조금 슬퍼 보였다. 마키노 상의

노래가 끝나고 점수가 나오자 아이짱은 금세 다시 활짝 웃으며 탬버린을 흔들었다. 관자놀이와 인중에 맺힌 땀을 티슈로 빠르게 닦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멋있다고 ‘스테키’를 몇 번이고 외쳤다.


아이짱의 웃음이나 땀, 마시기 싫을 때도 마셔야 하는 술이 모두 그녀의 노동이니 누군가의 노동을 함부로 안쓰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아이짱이 흘리는 땀에 마음이 쓰였다. 돌아오는 길에 문밖까지 배웅을 나온 그녀에게 '아이짱 다음에 또 올게요.'라고 말하자 무릎까지 살짝 굽혔다 펴며 '하이 써니짱 기다리고 있을게요'라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꽤 멀어진 후 돌아봤는데도 빨간 산타 옷을 입은 아이짱이 여전히 양손을 크게 뻗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늦은 시간 불 꺼진 번화가의 뒷골목에서 산타가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흰 수염도 루돌프도 선물 꾸러미도 없이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은 산타가 손을 흔든다. 이제는 아무도 잠든 우리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두지 않지만, 착한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쁜 일은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아이짱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속으로 인삿말을 되내며 나는 팔을 번쩍 들어 빨간 미니스커트의 산타에게 힘껏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