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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네 Jul 20. 2023

공생하고 싶지만 너무 힘든 벌집

첫 전원생활 기록 & 현재의 comment





이사한 지 한 달 하고 이틀째가 되는 동안 벌집을 세 채나 정리(?)했다. 이사오기 전 6개월간 비어있었던 집이라 마당엔 이렇게나 많은 토끼풀꽃이 있었는데 토끼풀꽃은 벌들이 정말 좋아하는 꽃이라 한다. 그래서 벌을 모으고 싶으면 토끼풀을 심으면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쨌든 처음 이사 왔을 땐 저 잘잘한 꽃들마다 벌들이 윙윙, 양봉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벌들이 많았다. 벌 때문 에라도 집안정리보다 마당정리가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이렇게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는 동안에도 벌들이 계속 윙윙거리며 겁을 주었다.




이렇게 덤불들이 우거진 주차장 쪽 돌틈들을 정리하는데, 갑자기 벌들이 웅웅 거리며 다가왔다.



벌이 오면 급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던 남편의 말을 순간 잊은 채 급히 피하겠다고 확 돌아서다가 팔과 등에 동시에 벌의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살짝 붓기만 하고 괜찮았지만 그때 생각이 확고해졌다.


'공생은 안 되겠군'


엊그저께도 저곳을 정리하다가 마른 채 덮여있던 덤불을 걷었더니만 기울어진 바위틈에 애기주먹만 하게 벌집을 만들고 있는 벌들이 있었다. 모기에 물렸을 때의 통증을 한 번 경험해서인지 가슴이 떨리면서 어째야 할지 당황했지만 큰 딸과 함께 양손에 스프레이 모기약을 하나씩 들고 하나 둘 하면 동시에 집중사격하는 방법으로 벌집 한 채를 치웠다.




어제는 데크에서 빨래를 널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려는데 아이들 방인 2층데크 천장에 등도 아닌 것이 붙어있고 그 주변으로 벌들이 윙윙거리는 게 보였다. 얼른 2층으로 올라가서 모기장문을 방패 삼아 자세히 보니까 역시나 벌집이었다. 크기는 역시 애기주먹만 하고..


아이들이 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즉시 벌집을 없애야겠다고 준비를 했다. 작은 아이는 인터넷 검색해서는 밤에는 벌들이 행동을 멈추니까 그때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아이들 방 밖에 벌집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단 모기약을 뿌리고 얼른 모기장문 안으로 피신하고 벌들이 그 냄새 때문에 잠시 밖으로 날아갔을 때 나도 나가서 벌집에 모기약 집중 분사하고 어디론가 날아갔다가 다시 벌집을 찾아오는 벌들에게도 모기장 안에서 분사.


모기약 냄새 때문에 멈칫하다가도 그 모기약 냄새나는 집으로 자꾸만 날아오는 벌들 때문에 결국 긴 농기구를 이용해서 벌집을 떨어뜨렸고, 벌집 흔적을 찾아 또 오는 몇 마리의 벌들을 포기시키기 위해 자를 가지고 벌집 있던 부분을 깨끗하게 긁어내었다.



벌들과의 한 판 전쟁으로 크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빨래를 너는데, 이번엔  벌 한 마리가 2층데크틈새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살며시 다가가서 고개를 들어 바라봐도 잘 보이지 않아서, 카메라를 들고 나와 플래시를 켜면서 사진을 찍어 봤더니



이런 상황이었다. 이 전원주택이 비어있었던 6개월 동안 이 집은 벌들의 집이 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벌이 좀 커 보이긴 했는데 두 번의 경험을 살려 다시 벌집 없애기에 도전했다. 모기장 안에 숨을 수도 없어서 일단 벌들을 쫓기 위해 모기약 뿌리고 멀리 가있다가 벌들이 잠시 자리를 피한 사이 의자에 올라가 벌집에 모기약 대량 분사하고 또 피신하는 방법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벌들이 그 모기약 냄새 때문에 섣불리 다가서지 못할 때 구둣주걱 이용해서 벌집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떨어진 벌집 모습.


꿀도 있고 애벌레도 있다. 미안했지만 떨어진 벌집에도 모기약 분사, 벌집 있었던 곳에도 다시 모기약을 분사했다.


거실 칭을 통해 보니까 1층은 1 층대로, 2층은 2 층대로 미련 남은 벌들이 한두 마리씩 자꾸 왔다가 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하루 지난 오늘은 벌들이 보이지 않는다.




공격당하지만 않는다면 더불어 사는 것이 맞는데, 사람 움직임에 너무 민감한 녀석들이라 공생은 어려울 거 같다. 내가 없앤 세 개의 벌집마다 살고 있던 벌들의 크기며 모양이 모두 달랐었는데 이제는 평소에 많이 봤던 일벌들만 마당에 있는 꽃들에 방문했다 간다.


졸지에 벌집 세 채를 치워버린 억척아주머니가 되어버렸다.^^


사람이 다니는데 문제 되는 곳이 아니면, 거미줄도 그냥 두고 화단정리하다 나오는 지렁이를 봐도 '좋은 땅이로군'하며 흐뭇해하고 처음엔 징그럽던 개구리도 종류별로 발견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는데 벌은 그 침 때문에 도무지 공생이 안될 거 같다.


요즘도 마당에 나갈 때마다 이곳저곳 살핀다. 이제 이 집엔 사람이 사니까 사람 없는 곳에 벌집을 지으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 집을 짓지 말아 달라고 나름의 페로몬을 내보내며 서성이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벌에 쏘인 등과 팔이 아릿하다.



comment


10년 전 6개월간 비어있던 전원주택에 갔을 땐 이미 지어진 벌집들을 정리하느라 고생을 했었다. 저 날 치운 벌집 말고도 남편과 함께 꽤 많은 벌집을 치웠던 것 같다. 비를 비할 수 있는 곳의 외부 천장 쪽과 풀들이 우거져 쌓인 곳엔 어디에나 벌집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비어있던 집에 이사 가서 가스를 시키면 가스를 배달하시는 분이 굉장히 조심하며 가스통 놓는 곳으로 가시는 걸 보게 된다. 그분들도 비어있던 집에 주인삼아 살던 벌들의 공격을 참 많이 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벌들의 공격을 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처음 이사 갔을 땐 여기저기 벌집을 확인해서 치우는 게 좋다. 한동안 살다 보면 벌들도 가능한 사람들이 자주 가지 않는 곳에 벌집을 짓는다. 크게 방해받는 곳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게 말벌집이 아니라면 그냥 두었다. 어차피 더불어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전원주택도 분명히 비어있었던 산속 집이었는데 10년 전에 비하면 벌이 확실히 없었다. 가끔씩 꽃들에 날아드는 벌들은 있는데 벌집을 딱히 발견하진 못했다. 벌들이 많이 줄었다는 데 그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사람눈에 띄지 않는 곳에 집을 짓는 노하우가 생긴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은 꿀을 채취하기 위해 날아오는 벌들도 마냥 반가운 존재가 되어 만나면 사진 찍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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