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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네 Nov 30. 2022

#3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에 성공하는 방법

결혼생활 28년 차 50대 엄마가 말한다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때가 있다. 어린 마음에도 시간이 쌓이다 보면 엄마의 힘든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번 보이기 시작한 엄마의 불행한 삶은 돋보기가 달린 듯 점점 크게 다가오고, 엄마가 그렇게 산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문득 더 절실하게 가슴에 닿는 날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엄마가 불쌍하다, 엄마가 안타깝다'를 넘어 '왜 그러고 사나'하는 속상함을 넘어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해지는 시기까지 넘어서고 나면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노라' 다짐하며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솟구치는 불덩이 같은 분노까지 움켜잡게 된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지나는 동안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의 행동 주체는 당연히 나여야 한다.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나의 의식과 습관과 환경이 엄마의 삶을 기억하기 때문에 일부러 더해지는 노력이 필수가 되어야만 엄마처럼 살지 않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건 상상외로 굉장히 지난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마침내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에 성공했다. 그렇게 노력했던 시간과 노력들에 대해 결혼생활 28년 차 50대 엄마가 말한다.



1.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거부한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사랑을 못 받고 자랐을 거라고들 많이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술로 인해 폭력적이 되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땐 전혀 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술만 마시면 온 집안을 공포로 몰아넣던 사람도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면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린아이에겐 그게 더 혼란스럽다. 지난밤 험한 말로 온 세상을 끝낼 듯 내 삶을 위협했던 사람을 온전하게 미워할 수 없는 상황, 술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이젠 다시 좋아질 거라고 스스로 어린 마음을 위로해야 하는 반복적인 시간들은 어린아이로 머물 수 있는 시간들을 빠르게 갉아먹는다. 빠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는 아빠 같은 폭력적인 사람과는 절대 사귀지 않겠다고 끝없이 다짐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짐과는 다르게 그런 사람만 골라 만나는 것 같은 사람이 주변에 한 사람씩은 있다.


그것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친절한 건 너무나 당연함에도 그게 나를 위해주는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참 많다.  남자를 만날 때도 익숙해서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인지 그 누가 봐도 나를 위하는 게 느껴지는 편안함인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 무의식적인 익숙함,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예민하게 파악하며 거부해야 한다.



2. 내 결혼에 부모의 허락이 꼭 필요하지 않다

내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면 엄마의 기준으로 내 남자를 선택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이미 엄마는 결혼에서 성공한 케이스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빠는 말해 뭐하겠는가. 아빠 또한 결혼생활에 대한 나쁜 사례를 충분히 보여준 케이스로 내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원인제공자일 뿐이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부모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뿐, 내 결혼은 내 삶의 중요한 문제다. 고로 내가 결정해야 한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떠올렸을 때 따스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떠오르거나 아예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무난했다면 그땐 허락이 아닌 부모님의 공감을 받고 싶어 할 수는 있겠다.


나의 아빠는 돈 벌던 큰 딸의 결혼을 못마땅해했고 엄마는 돈 없는 남자라고 속상해하셨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때도 여전히 풍족하지는 못했던 나의 결혼 생활을 엄마가 며칠 지켜보실 기회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시기 전, 엄마는 진심으로 내가 부럽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의 불행의 원인이 돈이 아니었음을 그때서야 깨달으셨던 걸까? 엄마와 다른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그 다짐을 잊지 않은 채로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내 결혼에 부모의 허락이 꼭 필요하진 않다.






3. 깨달은 그 순간부터 바꾸면 된다

세상이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려서 겪었던 대로, 봤던 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행동들이 일상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미처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내가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되기도 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난 자연스럽게 매를 들었다. '내가 어려서 매를 맞았던가' 하고 기억해보려 하면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일부러 암울했던 시기의 기억을 지우려 애쓴 세월 덕분에 난 어린 시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지방색이 가득했던 언어적 폭력은 기억이 나는데 육체적 체벌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내가 30cm 자를 훈육용 매로 사용하는 과정은 너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잘못하면 매를 맞는 것'이라는 기준은 내 어디에서 생겨났던 것일까.


그날도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잘못을 한 일곱 살 큰 아이는 무릎을 꿇었고 그 앞에 앉은 나는 30cm 자를 들고 있었다. 아이의 잘못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아이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앉아 눈물이 그렁한 채로 나를 봤다. 한참을 얘기하다 문득 마주친 아이의 눈 속엔.... 깊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 두려움은 잊고 있던 어린 나의 두려움이었다.


아이에겐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주는 두려움, 그것을 내가 내 아이에게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자를 버리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가 미안해.... 하며 한참을 울었다. 그 순간 이후, 난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따라 하는 엄마의 모습들, 그것은 결국 내 딸 또한 힘들었던 나처럼 자라게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 그 순간부터 바꾸면 된다. 



4, 생각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어린 시절, 엄마가 불쌍하다고 느끼면서도 '이건 아닌 것 같다'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엄마가 아빠의 잘못된 점을 자녀인 우리들, 특히나 장녀인 나에게 끊임없이 얘기하는 거였다. 어린 나이에 내가 엄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속상함을 토로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엄마가 했던 얘길 또 할 때도 난 그냥 듣고만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 당시의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엄마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내가 한 생각은 '엄마가 얘기하는 아빠의 잘못된 점들은 엄마가 말하지 않으면 나나 동생들이 알 수 없는 부분들이니까 엄마가 그런 얘길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빠를 싫어할 이유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그런 생각을 가진 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은 나는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의식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남편에 대해 흉을 보거나 내가 느끼는 남편의 단점을 얘기하지 않았다. 아빠와 딸의 관계는 그들 간의 교감을 통해 형성되어야 할 부분이므로 나의 말들이 그들의 관계에 그 어떤 영향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도 다정한 성향의 남편이었기에 딸들이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딸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거기엔 분명 나의 노력도 일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라면서 반복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강하게 기억된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나의 삶에서 행동으로 옮겨본다.




5. 우기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생각한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떤 이유로든 마음에 상처가 남은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하다. 그래서 자기의 의견을 거부당하면 또다시 상처받았다고 느낀다. 사회생활할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라고 느껴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라 받아들이지만 결혼을 하고 자신의 가족이 생기면 그들에게서 만큼은 상처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가족들과 어떤 문제로 얘기할 때 거의 자신의 페이스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경우가 많고 가족들도 엄마 말대로 하는 게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경험상 알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폭력적인 아빠가 있을 땐 수동적이던 나의 엄마가 아빠가 없을 땐 자신도 모르게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우리를 교육했던 모습을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의도치 않게 모방했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조차도 아이들에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육아서부터 심리학 책까지 닥치는 대로 읽으며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어떤 주제를 놓고 가족들과 의견이 다를 때 그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내가 아무리 책을 읽더라도 내 근본에 깔려있는 나의 의식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로 채워져 있기에 그 안에서 파생되는 의견들이 항상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내가 바뀌기 위해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의견을 듣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내 생각의 폭을 넓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고 대화가 많은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그 시절의 집안 분위기를, 내 가족이 나 때문에 느끼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가족 간에 의견이 다를 때 우기기보다는 받아들이고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어린 시절엔 그저 나의 보호자로만 생각하던 엄마를, 자라면서 같은 여자의 위치에서 보게 되고 거기에 나를 대입하기 시작하면서 난 절대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성인이 된 나의 딸들은'엄마'를 떠올렸을 때 절대 불쌍하다거나 안타깝다거나 답답하다거나 속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또 나의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딸들이 나처럼 자라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가 잘 살아왔다고, 결국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에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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