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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네 Nov 21. 2022

#2 딸 같은 며느리 아닙니다

결혼한 지 28년차, 50대 며느리

  

시댁 모임이 있어 외출을 하는 날,

준비하는 시간 내내 마음이 자꾸만 뭉친다.

내 삶에 있어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나도 누군가 툭 뱉는 한마디에 상처를 받곤 하는데 그런 생채기는 주로 가족행사에서 생긴다.     

사람 간 관계의 종류가 많긴 하지만 가장 힘든 게 법률로 맺어진 가족 관계라는 생각을 하며 거울 속 흰머리를 매만진다.


'50대 여자의 흰머리'

이 흰머리로 인해 난 오늘 툭툭 던지는 돌멩이 같은 말들을 견뎌야 할 것이다.

숨을 크게 쉬어도 마음이 자꾸만 뭉쳐오고 모처럼의 외출 기념 셀카를 찍으며 활짝 웃어보려 해도 굽 낮은 구두조차 발끝에서부터 옥좨오기 시작한다.

남편과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휴게소에 들러 간식을 사 먹고 커피도 마시며 데이트 분위기를 내면서도 손으로는 자꾸 머리를 만진다.

날씨는 정말 좋은데...

  

        


- 결혼이 변화시키는 '내 가족'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한 순간부터 모르던 사람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처럼 지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난 그저 사랑해서 결혼했을 뿐인데 처음 본 남편의 먼 친척이라는 사람들이 나를 너무 편하게 대하는 것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당연한 듯 확 다가오는 그 법률적 관계들이 버겁게 느껴졌다는 거다.      


시가 어른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가족으로 며느리가 들어오면 딸 같은 며느리, 자매 같은 시누이올케 관계, 돈독한 동서 관계를 유지해주길 당연하게 원한다.

하지만 그건 때 이른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한 둘이 잘 살아주기만 바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것이 기본값이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둘이 잘 살아주면서 점점 그 이상의 역할까지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대견해해야 하지 않을까...     


개그우먼 김신영 씨가 둘째 이모 김다비 캐릭터로 부르는 '주라 주라'라는 노래 가사 중에 '가족 같은 회사라고 말하지만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라는 가사가 있다.     


이제 막 결혼한 여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갓 결혼했을 때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신이 20년 이상 함께 살았던 결혼 전 자신의 가족이다. 결혼을 통해 그 원래의 가족에 남편이 살짝 포함된 거라고 느끼는 상태다.

이후 결혼생활이 지속되는 동안 심리적으로도 결혼 전의 ‘가족’으로부터 서서히 자립하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과 내가 중심이 된 가족’이 '내 가족'이라는 자연스러운 확신이 점진적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결혼했다고 시가 사람들과 바로 친해질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결혼이 원인이 되는 법률적 가족    

남편의 가족은 남편으로 인해 알게 되고  결혼이 원인이 되어 생겨난 법률적 관계의 대상일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과 결혼하기 전엔 어쩌다 마주치는 이웃집 사람보다도 더 상관없던 생판 남이었지 않은가 말이다.


‘결혼’했다는 이유로  내가 이전엔 잘 모르던 사람들과 가족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자.

모르는 사람끼리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결혼하기 전 가족들과 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그건 결혼을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 남편의 가족들일지라도 나에겐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결혼을 하면 그와 동시에 그 남편의 가족들, 어쩌다 만나는 아주 먼 친척들까지도 원래 친했던 것처럼 지내야 하고, 집안 서열이라는 것에 따라 초면임에도 나에게 대놓고 반말을 해도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웃어야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을 만나 알아가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까지 가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갑작스럽게 생겨버린 법률적 가족에게는 알아가는 시간, 친해지는 시간을 건너뛴 채 원래 알던 사이처럼 친밀함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말이 통해서 남편의 누나와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성격이 맞아서 남편의 어머니와 격의 없이 지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상이 누구든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으며 그런 사람에겐 '결혼'으로 생긴 법률적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또한 남편의 가족이라고 해도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면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엔 법률적 가족 관계에 맞춰 예의만 갖추는 사이로 남을 수도 있는 거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람 사이 친밀도를 강제로 높일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는 아니지 않은가!


  


- '법률적 가족'의 의미

지금껏 이어져 온 사회적 관습은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가족은 나의 가족이라고 닥치고 받아들이라 한다.

관계의 발전엔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면서도 '결혼'을 통한 법률적 가족 관계는 여전히 예외적인 상황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해하기도 또 인정하기도 어려운 이 현실과 의뭉스럽게 타협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남편의 가족 전체를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로 정의하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 '시아버지는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아버지', 그 외 내 남편의 형제자매인 사람들로 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많은 낯선 사람들 중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더 특별하게 대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나 사이에 '사랑하는' 남편이 존재하기에 살갑지는 않아도 모나지 않은 가족으로 지내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 의미가 생긴 대상들.

그것이 내게 있어 '법률적 가족'의 의미이다.

          



- 딸 같은 며느리는 아닙니다     

간만의 만남에 반갑게 혹은 반가운 척 웃는 모습으로 며느리의 역할을 위해 노력하는 중에 결국 돌멩이가 날아왔다.

“넌 머리가 왜 그래?”

70 넘은 당신께서도 염색하시는데 50대임에도 흰머리인 먼 친척 며느리가 눈에 띄셨나 보다.

“흰머리 기르는 중입니다”

이해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춘다.

“젊은데 염색해야지, 머리가 하얘서....”

마뜩잖은 표정으로 뭔가 더 얘기를 하시려 할 때 남편이 다가와 얼른 내 앞에 서며 다른 얘기를 꺼낸다.

간간이 내 머리에 머무는 눈길들.

아예 모르는 타인들은 신기한 듯 보고 지나치기에 아무 상관없는 타인들 속에선 오히려 마음이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법률적 가족 사이에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돌멩이 같은 말들이 날아온다.

 '가끔 보는 만큼 서로 좋은 얘기만 나누고 기분 좋게 헤어지면 참 좋을 텐데.... '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되고 그 부부 관계를 통해 시가, 처가라는 관계까지 확장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그런데 오히려 결혼을 통해 생겨난 그 새로운 관계들이 원인이 되어 부부의 결혼 생활이 흔들리기도 하는 걸 종종 보게 된다.     

결혼을 통해 생겨난 관계들로 인해 내가 힘든 하루를 보냈을지라도 그것이 그들과 나 사이에 있는 남편의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문제인가를 잘 따져봐야 한다.

남편도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라면....

그냥 내가 그런 일들이 있어서 힘들었다는 얘기 정도로 마무리 짓고 마음에서 털어야 한다.


결혼이 원인이 되어 생겨난 법률적 가족들이 우리 부부의 사이를 흔드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부부'가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갓 결혼했을 때부터 딸 같은 며느리는 아니었다.

결혼한 지 28년이 되고 50대인 지금도 난 여전히 딸 같은 며느리는 아니다.

다만 나를 사랑하는 남편을 사랑하기에, 남편이 사랑하는 법률적 가족들이 나에게도 특별할 뿐이다.

https://youtu.be/b-YuO5SBj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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