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함과 연민이 흐르는 대화
대화나 공간에도 흐름이 있어요. 예전에 종로에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어요. 종로 한복판에 있는 2층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평일 종로 2가 거리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정말 물결처럼 사람들이 신호등을 이리저리 건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여기서도 공간의 흐름이 있었어요.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어요.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오후 1시가 되니 직장인들은 잠잠해지고 노인들이 거리에 어느덧 많아지더라고요. 근처에 탑골 공원이 있다 보니 노인분들이 많은가 봐요. 커피숍에도 노인분들이 거의 자리를 차지하셨죠. 가끔 그렇게 사람들의 물결이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걸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우리의 대화 흐름도 비슷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색한 내용이 오고 가다가 어느새 대화가 무르익어지면 커다란 에너지장(場)에 있는 것처럼 활기차고 즐거움을 함께 느끼기도 하지요. 농담처럼 개구리 튀는 방향과 우리의 대화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하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왜 이런 얘기가 나왔지? 하며 서로 그 원천을 추적해 보기도 하지요.
이런 대화도 즐겁지만 코칭 대화는 목적이 있는 대화라고 합니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점검하고 더 나은 길로 안내하여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게끔 안내하는 게 코치의 몫이기도 하고요.
가야 할 곳이 정해지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가야겠지요. 애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애를 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판단하는 것, 내 생각을 주입시키는 것, 또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견주어 생각하는 것.
또한, 충고, 조언, 평가, 판단(충조평판)하지 말라 했습니다. 충조평판은 대화의 노를 저어가기 힘들게 만듭니다. 대화하다가 대화의 문이 아스라이 닫혀가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대화의 문은 마음의 문입니다. 가능성의 문입니다.
물 흐르듯이 진행되는 대화. 그 물이 그냥 흘러버리는 게 아니라 나무에 영양을 주고 대지를 촉촉이 적시듯, 우리의 영혼도 그렇게 자양분을 얻고 대화 속에서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게 하는 게 코칭 대화가 아닐까요?
십 수년 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워크숍 센터에서 교육 및 세미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비폭력 대화"의 대화법이 코칭 대화와 신기하게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는 상대방을 향한 따뜻하고 열린 마음에서 나오는 대화입니다. 비폭력이란 말에서 느꼈겠지만, 저자는 비폭력이라는 말을 간디와 같은 뜻으로 쓴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자연스럽게 본성이 연민으로 돌아가는 상태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비폭력 대화의 핵심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연결되는(compassionate connection) 것’이다.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과도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 때 진정한 평화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이다." - 마셜 B. 로젠버그(2003), <비폭력대화> 바오 -
비폭력 대화로 인해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습관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가를 의식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코칭에서도 모델이 있듯이 비폭력대화도 모델이 있더군요.
"비폭력대화 모델의 네 요소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이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행동을 관찰한다.
관찰한 바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표현한다.
그러한 느낌이 들게 하는 욕구, 가치관, 소망 사항을 찾아낸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한다."
- 마셜 B. 로젠버그(2003), <비폭력대화> 바오 -
위의 내용이 대화의 핵심이며,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모델 개념을 설명합니다.
예시) 한 어머니가 십 대 아들한테 이 세 요소를 다 넣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펠릭스야, 더러운 양말 두 짝이 돌돌 말려서 탁자 밑에 있고(관찰), 또 세 짝이 TV 옆에 있는 걸 보면 엄마는 짜증이 난다(느낌). 여럿이 함께 쓰는 방은 좀 더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는 것이 나는 좋거든(욕구)!"
그리고 그녀는 바로 네 번째 요소인 구체적인 부탁 사항을 말한다.
"네 양말 뭉치는 네 방에 놓든지, 세탁기에 넣어 놓을 수 있겠니?"
네 번째 요소는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해 주길 바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네 가지 요소 중에 첫 번째가 관찰이듯이 우리의 삶에는 관찰이라는 요소가 여러모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사람 관계에서의 관찰은 상대를 깊게 알 수 있는 관문이 되는 거죠.
비폭력대화에서 관찰은 평가와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관찰입니다. 인도의 철학자이자 영성가인 크리슈나무르티가 “인류 지성의 최고형태는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요.
우리가 코칭 공부를 할 때 적극적 경청을 하라고 하지요. 그 적극적 경청은 에고를 배제한 맥락적 경청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비폭력대화의 목적은 자신의 행동과 느낌, 생각에 대한 책임을 인지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솔직함과 공감에 기반을 둔 인간관계를 구축하여 모든 사람이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코칭과 닮아있지요?
또한, 비폭력대화의 두 가지 중요 영역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기와 공감하기입니다. 공감은 진정한 대화를 위해 꼭 필요한데,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의 말을 존재 자체로 듣는 것, 온전히 함께 머물러 주는 것이라고 하며, 이는 다른 사람에게 가지는 선입견과 판단을 떨쳐버린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도 폭력적일 때가 있어요. 자기 비난, 책망, 회피하는 내면의 대화를 통해서 결국 남을 대하는 태도까지 그 느낌이 확산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생각하고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비폭력 대화는 상처를 보듬어 주는 연민의 대화입니다. 그렇다고 비폭력대화가 무조건 복종적인 대화법은 아닙니다. 비폭력이라는 상대의 폭력적인 대화에 무조건 굴하고 패배적인 반응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용기가 필요하며, 당당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화이고 용기 있는 대화입니다.
코칭을 할 때도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질문이면 당당하게 던져야 하는 것처럼요. 나 자신과 상대의 느낌, 감정,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표현하며 원하는 것을 얻는 의사소통 방법이고, 이 또한 실습이 필요한 대화법이기에 그토록 교육센터가 전 세계에 펼쳐져 있나 봅니다.
대화의 흐름으로 시작해서 비폭력 대화까지 글의 흐름도 흘러 흘러 왔네요.
그래도, 이 흐름이 강물처럼 자연스러운 성찰의 흐름이라면 오늘도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