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나쁜 것이 아닙니까> 책리뷰 :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기능들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 아닙니까> 북리뷰 :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기능들을 톺아본다
죽지 않는 한 우리는 더 강해진다
만화 <드래곤볼>에서는 사이어인이란 종족이 있다. 주인공 손오공도 이 종족의 일원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은 타고난 전투 민족으로서 요상한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치열하게 싸운 뒤 몸이 회복되면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전투력이 상승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싸울수록 강해진다. 전투로 인해 죽거나 불구가 되지 않는 한 그들은 더욱 전사다운 전사가 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명언이 가히 딱 들어맞는 종족이다. 정말 문자 그대로 만화 같은 얘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인간 역시 마치 <드래곤볼>의 사이어인들처럼 고통을 극복할수록 강해지는 성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뇌 과학자이면서 신경 심리학자인 저자 이안 로버트슨은 그동안 뇌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에 대해 수많은 사례를 수집하고 검증하면서, 뇌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그 결과로서 얼마나 더 발전된 기능을 갖출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무작정 스트레스를 피하라고만 하라든가,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않는 법에 대해서 강조하는 기존의 ‘회피 권유형 자기계발서’들과는 결이 다르다.
인간의 신체는 불변하는 하드웨어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기에 접어들면 우리의 신체와 기질이 어느 정도 특정한 형태와 기능으로 고정된다고 생각한다. 키와 체격은 더 이상 커지기 힘들고, 지능과 성격은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어릴 때보다 좋아지기 힘들다고 여긴다. 얼굴형이나 골상 등은 성형을 하지 않는 이상 개선되기 어렵고, 삶에서 맞이하는 여러 국면을 맞이할 때 특유한 성향이나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여간해서는 바뀌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안 로버트슨은 우리가 사는 동안 어떠한 ‘의지’를 갖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뇌가 활성화되고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는 그가 학자 겸 임상치료사로서 그동안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들의 사례와, 학계에 보고된 연구물들을 토대로 신체라는 하드웨어가 인간의 마인드라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려 40년 동안 진료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를 보여준 그의 열정과 끈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마인드의 물리적(피지컬) 기능
마인드는 비(非)물질적인 존재다. 반면에 뇌는 뉴런과 신경전달물질로 이뤄진 물리적인 존재다. 그런데 이 책은 양자 간의 상호관계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마인드가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로서 노드아드레날린을 생성한다고 말한다. 노드아드레날린은 인간이 공포나 경악, 놀람 등을 느낄 때 뇌에서 분비된다. 이 노드아드레날린이 분비됨으로써 인간은 두려움을 느낄만한 변칙적인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현명하고 용기 있게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어렵고 난해한 상황에 봉착할수록 오히려 그 도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갖는다면 노드아드레날린도 활성화된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에 확신을 갖는 마인드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피지컬 기능을 증강시킨다면서, 자아 통제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재미있는 점은 신경전달물질 문제만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우뇌와 좌뇌 중 어느 쪽을 억제하고 어느 쪽을 활성화시킬지도 결정된다. 책에 따르면 우뇌는 어렵고 난해한 상황에서 회피하는 사고와 행동을 촉발한다. 반면에 좌뇌는 어렵고 난해한 상황이라도 그에 맞서 해결하려는 사고와 행동을 촉발한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가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면 우뇌가 활성화되고, 반대로 맞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일수록 좌뇌가 활성화된다. 뇌가 시키는 대로 우리의 태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가 뇌의 어느 부위를 가동시킬지 결정한다는 얘기이다. 얼핏 들으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에 위배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엄연히 실제 사례와 실험들로 그것들이 사실임을 낱낱이 입증해주고 있다.
그러나 가끔은 후퇴와 관조도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독자에게 중요한 경고를 하나 한다. 스트레스에 과감히 맞서서 노드아드레날린을 생성시키고 좌뇌를 운동시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가끔은 우뇌를 작동시켜야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뇌는 어렵고 난해한 상황에서 한발 물러서려는 사고와 행동을 촉발한다. 이는 분명히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이나 처지, 그리고 주변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스트레스에 대항하여 열정적으로 도전하였지만 정작 난제가 해결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제 곧 잘 될 것이라며 마냥 낙관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다. 흡사 세르반테스의 소설의 주인공 ‘돈키호테’처럼 약간은 조증(躁症, manic) 상태의 ‘흥 부자’들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이들은 낙관주의자이기는 하되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자신의 환자들 중에 이처럼 비현실적으로 낙관성만 추구한 나머지 끝내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처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낙관성에는 일정부분 현실성도 가미되어야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이렇게 한발 뒤서서 문제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자세를 두고 ‘창조성’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뇌 과학에서는 인간의 창조성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우뇌라고 밝혔다.
결국 뇌 기능의 균형만이 살길이다
세상 모든 일이 순조로우려면 중용이 필요하듯이, 뇌 안에서도 좌반구와 우반구끼리 기능상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스트레스를 독이 아니라 약처럼 이용할 수 있다. 눈앞의 스트레스를 과감히 베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되, 때로는 스트레스라는 숲이 너무 우악하면 우회로를 찾아보는 현명함도 필요하다. 들이대며 전진하려는 좌뇌와 물러서서 관조하려는 우뇌 간의 조화, 그것이 저자 이안 로버트슨이 독자들에게 전해주려는 그의 40여년 내공의 핵심 메시지다.
※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달 및 공유는 자유로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