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제 입장료에 담긴 아메리카 제국의 저의를 찾아서
기부제 입장료에 담긴 아메리카 제국의 저의를 찾아서
* 이 글은 이동규 작가가 시민기자 자격으로 언론사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 글의 원본입니다.
Pay-What-You-Wish (원하는 만큼만 내세요)
뉴욕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낙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크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다, 세계 어떤 대도시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대형 박물관이 무려 세 개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ional History), 클로이스터스 박물관(The Cloisters Museum & Garden)이 그것이다. 심지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및 런던의 대영(大英)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세 개의 대형 박물관은 미국을 대표하는 대규모 박물관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입장료가 도네이션(donation)이라는 점이다.(다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2018년 3월 1일부터 뉴욕 주 거주자들에게만 기부제 입장료를 허용하는 식으로 정책을 변경했다. 2018년 3월 1일 이후부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방문하려는 이들은 주의하시길 바란다.) ‘Donation Fee’는 문자 그대로 기부, 즉 관람객이 원하는 만큼만 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관람객이 오로지 1센트만 내고 구경하고 싶다면 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박물관 측이 제시한 ‘권장 입장료’(Suggested Donation)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권장한 금액은 어디까지나 제안(suggest)일 뿐, 그를 따를지 말지는 본인의 자유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나라 미국이 아니던가.
의외로 이득일지도 모를 기부제 입장료
일단 기부제 입장료 정책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득 호기심이 일면서 수상쩍은 기분도 든다. 이들이 입장료를 기부제로 운용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과 의구심이다. 그저 그들의 순수한 호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지만, 세상 풍파에 자못 때가 끼어버린 나 같은 인간들은 백지장 같은 세상이 있으리라 쉬이 믿지를 못한다. 따라서 감히 추측해봤다. 혹시 기부제 입장료가 정액제 입장료에 비해 박물관 입장에서 더 큰 수익을 안겨주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왠지 자본주의의 상징국인 미국이라면 으레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실험이 2010년에 과학 저널『사이언스(Sience)』에 게재된 적이 있다. 참고로 사이언스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발간하는 저명한 과학 전문 주간지다. 미국의 어느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나 해봤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안 이용객들의 사진을 찍은 뒤 이를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것이었다. 사진을 원하는 고객은 놀이공원 측이 제시한 방식대로 사진을 구매할 수 있었다.
놀이공원이 사진을 판매하는 방식은 총 4가지였다. 첫째는 12.95$로 금액을 고정해서 파는 것이었고, 둘째는 12.95$로 금액을 고정하되 그 금액의 절반은 자선단체에 전달하여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쓰인다고 말한 것이다. 셋째는 완전히 고객에게 금액을 일임하는 것이었고(뉴욕 박물관들의 ‘기부제 입장료’와 유사하다.), 넷째는 완전히 고객에게 금액을 일임하되 그 금액 중 절반은 자선단체에 전달하여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쓰인다고 말한 것이다.
실험이 끝난 후 사진 판매 수입이 가장 높았던 실험은 넷 중 무엇이었을까? 사진 판매 수입이 높은 순서대로 나열하면, ④($6,224)→②($2,331)→③($2,176)→①($1,823)이었다. 실험 결과에 대해 나름 의미 해석을 해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형편과 사정에 맞춰 재화를 소비하는 경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타적인 동기가 부여되었을 때 사람들의 지출 정도가 커진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뉴욕 박물관의 기부제 입장료가 ③의 실험과 유사하고, 그 외 대개의 박물관들의 입장료가 ①의 실험과 유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뉴욕의 대형 박물관들은 입장료를 기부제로 운용함으로써 입장료가 정액제일 때보다 되레 더 많은 수익을 꾀할 수 있다. 위 실험을 인용하면 기부 요금제가 고정 요금제보다 약 19% 정도 더 수익이 높다.
그리고 ③의 실험은 ②의 실험에 비해서도 ‘실질’ 수익은 더 크다. ②는 결국에 수입금액 중 절반은 자선단체에 전달하기 때문에 놀이공원 측이 벌어들인 실질 수익은 1165.5$다. 반면 ③으로 벌어들인 실질 수익은 2,176$ 그 자체다. 그러므로 실제 놀이공원이 벌어들인 금액은 ③이 ②보다 높다. 한마디로 이 실험에 근거하자면, 뉴욕 박물관의 기부제 입장료는 우리의 직관과는 다르게 속칭 제법 돈이 되는 운영 방침일지도 모른다.
보고 듣고, 상상하는 즐거움
물론 기부제 입장료 때문에 뉴욕의 대형 박물관들이 시쳇말로 쏠쏠하게 돈을 벌고 있는지 아닌지는 내부관계자가 아닌 이상 알 턱이 없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우 뉴욕 주 거주자들에게만 기부제 입장료를 허하는 식으로 정책을 바꾼 것을 보니, 여행객과 현지인 간에 기부제 입장료의 수익 창출 효과가 달라서 그러한 운영 방침이 항상 경제적으로 효율성 있다고 확신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혹은 박물관들이 그저 세계 제1 강대국이라는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이거나, 아니면 제국주의 시절 타국의 유물들을 찬탈한 일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으로서 기부제 입장료를 시행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열거한 사유들 외에 또 다른 것들이 까닭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모든 이유들의 전부 혹은 일부가 공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외를 여행할 때 그 곳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그저 그것들이 ‘있다’는 것에만 경탄하는 일은 반쪽자리 여행이 아닐까 싶다. 낯선 것을 보며 ‘왜?’라며 질문을 던져보고 자기 방식대로 대답을 꾸려보는 자세도 여행이 주는 특권이 아닐까. 특히 그것이 아무도 속 시원하게 답을 내려준 적이 없는 미지의 질문들이라면 맞든 틀리든, 사실이든 아니든, 본인만의 대답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 듯하다.
미국의 정치적 수도가 워싱턴이라면, 미국의 경제적 수도는 뉴욕이다. 마천루들이 즐비하고 월스트리트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뉴욕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박물관들이 기부 형식의 요금제로 관람객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현상이 내게는 무척 기이했다. 그리고 그들의 저의를 추리해봤다. 나의 추리가 ‘합리적인 의심’일지는 모르겠으나 뉴욕에 있는 동안 경험했던 꽤 ‘재밌는 상상’ 중에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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