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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데이 Nov 11. 2023

아무렇지 않은 척 잘 버티고 있습니다만

어떤 감정과 사실은 잊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어렵다.

참 힘든 하루였다.


Green light로 생각하고 잔뜩 들떠 있었는데 아니었다…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야 할지….


실망, 후회, 아쉬움, 서운함, 도돌이표, 다시 긴긴 기다림, 묻고 싶다 왜냐고.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소용이 없으며 내게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한 보름간 기대감에 들떠 있었고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이번 탈락을 교훈 삼아 다음 기회는 꼭 잡아야지.


오늘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외박을 나오시는 날이다.


엄마를 병원으로 모시러 가야 하는데 이런 무거운 마음으로 엄마와 어찌 시간을 보낼 것이며, 마음 같아선 오늘 저녁만큼은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잊고 싶었다. 빨리 잊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감정과 사실은 잊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어렵다.



엄마 외박 날짜를 변경할 까 하다가 잔뜩 기다리고 계신 엄마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고 외박 절차를 조정할 생각을 하니 이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꾸역꾸역 퇴근시간까지 잘 버티다가 엄마 병원으로 향했다.


11월 금요일 퇴근길은 날씨는 며칠 전과 달리 어느덧 매서워져 있었고 짙은 어둠과 차량들로 꽉 막혀있었다. 마치 내 마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오늘 하루 잘 버텼지만 운전하는 차 안, 혼자만의 공간에 있으니 그간 들떴던 감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더 외롭고 차가운 현실자각 타임이 엄습한다.


금요일 퇴근시간 교통량이 많아서인지 내비게이션이 낯선 길로 안내해 준다.

아는 길로, 평소 다니던 길로 갈까, 아니면 교통상황을 반영한 덜 밀리는 낯선 길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엄마가 기다리고 계시기에 후자를 택했다.


낯선 길은 골목골목... 고급운전자 코스였다.


이런 길인줄 알았다면 내 운전실력으로 이 길을 택하지 않았을 텐데…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엔 이 길을 선택하지 않으리.


겨우 골목을 빠져나와 큰 도로로 진입시점, 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과연 내가 도로로 진입할 수 있게 끼워줄까…


하지만, 이곳에서 뜻밖에 나의 힘든 하루를 위로받았다.


그분은 오늘 나의 하루가 녹록치 않았음을 아시는 분 이었을까.


내가 골목에서 도로로 진입할 수 있도록 속도를 줄여 심지어 "멈춰준" 바로 그 차주 분


나는 감사의 깜빡이를 격하게 오랫동안 켜서 그 고마움을 전했다.


“당신의 그 몇 초의 멈춤이 오늘 저희 힘든 하루를 위로해 주었어요.”


덕분에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엄마를 무사히 집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1박 2일 외박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새벽 2 시약을 드시게 했으니 이제 자야겠다.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입소하신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날 위로해 주는 듯한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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