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50대 아줌마는 빠순이 에세이를 썼나

20세기 소녀의 첫 에세이 집필기

by 박유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20세기 소녀이자 21세기 아줌마 인사드립니다.

말로만 듣던 브런치에 드디어 첫 글을 쓰네요.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 덕분에 용기를 얻어 찾아왔습니다.

우선 <돈 버는 브런치 글쓰기> 류귀복 작가님을 샤라웃 한번 하고 갈게요.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돈 벌러 온 건 아니고요. (뭐 벌면 좋지만 당장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알고 왔습니다 ㅎㅎ)

마침 새해이기도 하고 뭔가 새로 시작해 보고 싶었어요.

오십 번이 넘는 새해를 맞이하고도 뭔가 이뤄보겠다는 의지는 커녕, 막연한 기대조차도 품어볼 생각을 못했던 지난날의 저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제가 가진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정리가 좀 필요해서 우선 정리된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합니다.

작년 이맘 때쯤 저는 갑자기 무슨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 마냥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저에게 책 쓰기는 포기를 배추 세듯 하면서도 놓지 못했던 꿈이었습니다.

원고를 완성하는 것 자체가 꿈이었는데 곧 책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 예정이에요.

저에게는 기적과도 다름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


요즘은 책을 내는 데에도 여러 방식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낼 수 있지요.

저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는 더더욱 기적이에요.

왜냐하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그 일이 아무리 쉬운 일일지라도 마음이 병든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거든요.

잠에 들면 깨고 싶지 않고 잠에서 깨면 세상을 보고 싶지않은 사람은 자기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요.

공황장애, 우울증, 번아웃... 아픈 마음에도 지금은 이름이 있지만 저는 그 이름들이 알려지기 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맞이했었답니다.


1998년, 99년 그 무렵이었을 거예요. 출근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몸에 힘이 풀리고 눈앞이 캄캄해져 다음 역에서 급히 내려 바닥에 퍼져 앉아 정신이 들기를 기다리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벗어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었어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그래서 기절을 했냐고요?'라고만 묻더군요. 진짜로 기절을 했는지 안 했는지가 중요했던가봐요. 기절할 뻔은 했지만 진짜로 하지는 않았던 저는 꾀병 환자가 되었죠.

30대가 되어서야 20대의 제 꾀병에 공황장애라는 이름이 있음을 알았는데 그때는 이미 더 넓고 깊은 늪 속으로 잠겨들어가고 있었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책을 쓰기 시작했던 걸까요?

되짚어보면 저 자신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일이 많이도 일어났습니다.

그냥 이대로 지나가버리면 이 소중한 경험을 다 잊을 것만 같아 정리하면서 기록을 남겨둬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50대가 될 무렵, 단 한순간의 각성으로 저 자신이 30대와 40대라는 긴 시간 동안 버려진 정원에서 죽은 나무가지들을 뒤적거리며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우울의 시간이 참으로 길었지요.

각성이라는 단어가 좀 거창하게 들리지만 별 거 아니에요.

마음을 바꿔먹는 데 걸리는 시간이 손가락을 딱 소리나게 튕기는 시간보다도 짧아서 한순간의 각성이라고 썼을 뿐입니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나.

마음을 찾아 갔더니 비밀의 문이 열리듯 그동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앎이 제가 잃어버린 시간만큼 쌓여있더군요.

마음속 비밀 정원은 마치 '어서와~ 마음속은 처음이지?'라며 손짓하는 듯 했습니다.

죽은 나무 뿐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도 생명은 있더군요.

바로 그 아래에 있던 흙. 땅이었어요.

헛된 시간만 오래오래 보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땅에는 나도 모르게 내가 심어놓은 씨앗들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동안 뭔가는 하면서 살지 않았겠어요?

정말 그랬습니다.

꿋꿋하지는 못했어도 버티며 해나갔던 일이 있더군요.

매일 무거운 몸을 일으키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러 나갔으니 참 잘한 일이었죠.

경력 단절을 겪으면서도 교사로, 때로는 강사로, 새싹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겉으로는 짜증을 내고 있을 때조차도 안으로는 즐거워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던 거예요.

자기 안에 문제가 많으면 타인과의 소통도 어렵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학생들과 있을 때만은 달랐습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인기있는 선생 축에 속했으니 더 신기한 일이었죠.


또 다른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기 시작하자 곧 저라는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딸아이와 함께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갔던 내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더 예전으로 거슬러가서 아이의 등교(등원)과 저의 출근을 같이 준비 하느라 정신 없던 아침에도 음악 방송을 틀어두던 제 모습도 연달아 생각나더군요.

또다시 시간을 거슬러 밤새 아이를 재우느라 어르고 달래면서도 눈으로는 뮤직 뱅크 같은 음악방송을 보던 제가 있었습니다.

학창시절로 가니 서태지가 나오고 뉴키즈 온더 블록이 나오고 장국영이 나오고 박남정과 소방차까지, 잊고 있던 오빠들이 주르륵 제 마음속 비밀 정원에 등장하더니 반박이 불가능한 한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빠순이'라는 거였어요.

빠순이라니. 어감이 좋지 않지요?

당연합니다. 멸칭이니까요.

심지어 빠순이는 '년'이라는 한글자를 같이 데리고 다닐 때도 많기 때문에 빠순이에게 빠순이(년)(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제부터 전쟁이야'를 각오해야하는 그런 말입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빠순이라고 인정한다면요?

스스로 빠순이임을 인정하자 제 삶의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더군요.

학생들과 함께 떠들던 인피니트 얘기, 엑소 얘기.

학교를 그만두고 집 밖에도 잘 나오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을 때에도 방탄 콘서트를 가겠다고 꾸역꾸역 집을 나서던 일.

왜 지금도 여전히 조카뻘 자식뻘인 아이돌 친구들에게 늘상 관심이 많은지, 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돌 연습생의 데뷔에 목을 매는지. 이런 것들이요.

그렇습니다.

저는 빠순이가 맞아요.

어린 시절 TV에 조용필 아저씨가 나와서 '기도하는!' 이 딱 한 소절을 부르면 언니들이 '꺄아악!'하며 자지러지는 모습을 봤었습니다.

'쟈들은 미친 것들이가?'라고 아버지는 물으셨고 저는 그저 '몰라'라고 답했지만 그때 저는 그 감정이 너무 궁금했어요.

혈연도 지연도 뭣도 없는 생판 남이, 역시 생판 남을 저토록 자지러지게 좋아하는 감정은 도대체 뭘까 하고요.

아마도 그게 덕심이겠지요.

그리고 덕심으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이 빠순이고요.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데 빠순이가 스스로를 빠순이라고 부르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흑인 아닌 사람이 N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말하면 전쟁 선포지만 흑인들끼리 부르면 호미Homie들의 소속감이 뻐렁치는 것처럼 빠순이도 빠순이라서 괜찮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빠순이라는 정체성 확인.

여기서부터 저의 첫 책 첫 문장이 써지려고 손끝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답니다.

앞으로 그 이야기를 더 풀어볼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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