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방탄 때문이야. 그 날개 때문에

20세기 소녀의 첫 에세이 집필기

by 박유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최초로 했던 때는 꽤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정확한 날짜를 아는 이유는 검색하면 나오는 나름 명색있는 날이기 때문인데 제가 처음으로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보러 고척돔에 간 날이기도 해요.

그때 저는 가족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었고 집 밖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가지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네요.

번아웃에 이어진 무기력 때문에 다시 일을 시작할 용기도 없던 때였거든요.

쓸모없는 내가 세상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그 시절에 왜 그렇게밖에 못 살았는지 지금의 저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저에게 일어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답니다.


그랬던 제가 당시 중학생이던 딸아이와 함께 서울행 KTX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고척돔 4층 하느님 석에 앉아서 가뜩이나 잘 보이지도 않는데 자꾸만 시야를 가려오는 눈물 때문에 무슨 콘서트를 어떻게 봤는지도 몰랐어요.

가슴 안에서부터 덩어리가 자꾸만 울컥거리면서 올라오는 겁니다.

제 안에 그런 커다란 뭔가가 들어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때의 제 상황이나 감정은 에세이에 더 세세하게 썼는데 그걸 쓸 때에도 다시 울컥함이 밀려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 에피소드를 썼었어요. (웃긴 게... 이걸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ㅎㅎ)


저는 울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혹시 아세요? 진짜 진짜 마음이 아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는거.

늘 똑같이 일상을 살기에 겉으론 아무 티도 안 난다는 거.

살아도 죽어도 똑같은 좀비. 그런거에요.

심지어 그 자신도 자신이 그렇다는 걸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 고척돔 꼭대기석에서 처음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말들이 제 안에 가득 차있다고 느꼈거든요.

그걸 꺼내주면 좀 살 것 같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이 생겨났죠.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빈 화면을 바라보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읽을 줄만 알았지 직접 써볼 생각은 꿈에도 한 적 없던 소설이라는 걸 하나 썼었어요.

주인공에게 차마 제 이름을 주지는 않았지만, 40대 여성 주인공은 바로 저였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적 없는 저만 아는 저의 소설.

장편 하나를 완성하고는 뭔가 시작해서 끝을 본 게 얼마만인지 저 자신도 놀라버렸지요.


그 안에는 그때의 제 상태가 그대로 보입니다.

지금 읽어 보면 문장도 형편없고 감정 흐름도 일관성없이 왔다갔다하는 게 보여요.

그런데 그 엉망인 글을 써나면서도 마음속 덩어리가 실타래 풀리듯 조금씩 풀려나갔던가 봐요.

거의 매 페이지마다 울면서 썼던 그 이야기는 영원히 다듬어지지 않은 채 아직까지 그대로 있지만 저는 그걸 쓰고나서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동네 작은 영어 학원에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었지요.

그렇게 다시 아이들과 만났고 또다시 오랫동안 그 세상에 머물렀습니다. (이것도 지금은 과거형이지만요.)


지금의 저는 그때와는 또 다르지만 아무튼 영원히 단절될 뻔한 세상과 다시금 연결이 시작된 날이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를 봤던 날인 건 맞습니다.

그때 그 콘서트 제목은 <WINGS>.

나에게도 날개가 있을까.

처음으로 그 가능성이 궁금해졌던 날이었죠.





제 인생에는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덕질 시기가 찾아오곤 했는데 이 시기의 덕질이 저에겐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결국 세상에 나오게 될 에세이도 하나 썼고, 또 그걸 이러저러하게 썼노라고 말하는 지금 이 글도 쓸 수 있으니까요.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살아있으니까요.


방구석 빠순이 아줌마의 에세이는 BTS 덕질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소년들의 노래 한 곡이 하마터면 멀리 떠날 뻔한 저를 붙잡아준 아찔했던 순간이 담겨있어요. 그 이야기를 쓰면서 또 많이 울었지만 어찌나 속이 후련해지던지요. 아 이래서 글쓰기를 치유라고 하는가 보다 몸소 느꼈답니다.


sticker sticker


그때만해도 방탄소년단이었던 소년들은 BTS라는 우주 대스타가 되었고 지금은 모두 군복무를 마치고 완전체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지요. 그 친구들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어른이 되었겠지요. 부담스러우리만치 큰 기대를 받기도 하고 그만큼 큰 비난을 받기도 하면서요.


가끔은 그 친구들이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날 자신들이 다른 누군가가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이끌었던 손이었다는 것을요.

저 한 사람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이와 비슷한 의미가 되어주었기에 그렇게나 많은 팬들이 전세계에 있는 거겠지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혹시나 필요하다면, 혹시라도 필요할 때가 있다면, 나도 그 친구들에게 그런 손이 되어 주고 싶다고 말입니다.

쓸데없을까요? ㅋㅋ 그러면 뭐 더 좋고요.


그럼 다음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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