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녀의 첫 에세이 집필기
아이돌 사랑.
소녀들의 오빠 사랑과 같은 의미로 보던 시대는 지난지 오래라고 말하고 싶군요.
물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요.
빠순이.
연예인 오빠에 미쳐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여자애로만 보던 시대도 마찬가지로 지나갔습니다.
역시나 아직도 그걸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요.
자 그럼, 주장에는 근거가 필요하겠지요?
시작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근거.
'취향은 하루 아침에 변하지 않는다'입니다.
청바지를 즐겨입던 20대 박모씨(It's me)가 50대가 된 지금도 청바지를 입는 것과 같아요.
소방차와 박남정을 좋아했던 어린이가 자라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를 좋아하는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1세대 아이돌로 관심이 옮겨가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닐까요?
갑자기 '난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이제부터 다른 노래 들을게요' 할 수는 없으니까요.
원래 좋아하던 걸 계속 좋아할 뿐인데 그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세대가 교체되며 점점 어려진다는 사실이 옛 소녀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사실 혼란스럽게 만드는 외부 공격이 있을 뿐 정작 본인들은 혼란스럽지도 않아요.
'아이고 그 나이 먹도록 나잇값도 못하고 아직도 아이돌 어쩌구 ...' 이게 성가시게 느껴질 뿐 하던대로 하면서 잘 살고 있죠.
두 번째 근거.
'오빠들 안 죽었다' 입니다. (언니들, 누나들도 모두 오빠들로 퉁치겠습니다)
아이돌 3세대의 문을 열었던 엑소EXO의 데뷔년도는 2012년입니다.
빠순이들의 애국가 '으르렁'이 나온 건 2013년이고요.
그때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던 팬들 중에는 지금은 결혼도 하고 엄마가 된 이들도 있을 겁니다.
인생에서 가장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그때의 오빠들을 깡그리 잊었을까요?
그 오빠들이 관리 빡세게 하면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3세대가 이럴진대 2세대, 1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가서 함부로 '빠순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안돼요.
그 빠순이가 지금 누군가의 엄마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너무 멀쩡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포진되어 있다는 게 진실이니까요.
세 번째 근거.
'언니들이 돈을 써야 오빠가 돈을 번다'입니다.
갓 태어난 소녀들은 종종 자신들의 적은 나이가 '오빠 독점 자격증'인 줄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따금 옛 소녀들에게 실례를 범하기도 하죠.
'이십대 후반부터는 돌판 좀 떠나라.'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면서 일침 남긴 줄 알지요.
하지만 언니들은 그저 웃을 뿐입니다.
어차피 그들도 몇년만 지나면 똑같은 소리를 들을 테니까요.
언니들의 덕질이 있어야 오빠들이 돈을 벌고 소녀들에게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단순한 원리를 파악할 때쯤이면 그제서야 아... 내가 예전에 실언을 했구나 깨닫겠지요.
1990년대 후반부터 아이돌 역사가 시작되어 이제 대략 30년이 되었습니다.
오빠들이 나이 든 만큼 팬도 나이를 먹었지요.
옛 오빠들에게 변함없이 관심을 쏟고 있는 팬도 있겠지만 저마다 사는 데 집중하느라 그러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
저처럼 아이돌 내리 사랑을 실천하며 여전히 돌판에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어쨌든 빠순이는 이제 더이상 어리지만은 않습니다.
빠순이의 엄마도 빠순이였을 확률 높습니다.
그 엄마가 아직도 빠순이일 확률도 높아요.
그런 시대가 왔으니까요.
에세이를 쓰면서 제가 원래 지은 제목은 <여전히 빠순이입니다만>이었어요.
빠순이로서 저는 그 제목이 마음에 드는데 아직은 거부감을 느낄 분들이 많은 거 같아 수정해야만 했죠.
제목은 <덕질,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로 바뀌었지만 더이상 어리지 않은 빠순이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많이들 궁금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