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녀의 첫 에세이 집필기
나이를 이르는 한자어가 있지요.
15세는 지학, 20세는 약관, 30세는 이립, 40세는 불혹이라고 부르는 방식 말입니다.
국어 시간이었는지 한문 시간이었는지는 잊었지만 저는 이걸 중학교 때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시험에 나올까봐 외웠던 기억이죠.
그후에는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해서 저도 그냥 그런 줄 알고 살았지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에는 속마음이 감춰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인생 뭐 있어? 가는 거야!'를 외칠 때조차도 속으로는 '그래도 뭐가 있긴 있을 거야' 싶기도 하거든요.
'인생 뭐 없다손 쳐도 그래도 막 살면 안 돼' 싶거든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이 말은 나이가 그저 숫자가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말해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도전해 보는 거야'라는 뜻이 됩니다.
정말로 나이듦을 모르는 사람은 마치 영원히 젊기라도 할 것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살아버리니까요.
시간 값을 제대로 모르면 나잇값을 못하게 됩니다.
사실은 제 이야기 입니다.
지학의 나이 15세에는 학문에 뜻을 두었으니 그나마 나잇값을 했던 것 같아요.
방년 20세에는 나름 꽃다웠던 것도 같고요.
하지만 이후에는 값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선다는 이립의 서른에는 서지 못했고,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마흔에는 불혹은 커녕 미혹의 끝장을 보고 있었지요.
30대에는 나를 찾을 시간이 없었고 40대에는 나를 찾을 방법을 몰랐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긴 터널만 이어지는 게 삶이라면 차라리 놓고 싶었어요.
그때 저에게 주어져있던 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삶이 준 가장 값진 선물임을 모른 채 목적 없이 헤매었지요.
죽으면 모든 게 끝나지 않을까 하는 아주 막연한 기대를 희망이랍시고 품고서 말입니다.
그러던 저에게 50은 꽤 드라마틱하게 찾아왔습니다.
진짜로 죽을 지도 모르는 가능성과 함께요.
오랜 시간을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살았으니 몸이 반응하지 않을 리 없었지요.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데 그때 저는 세상의 이치같은 걸 생각하며 살만큼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몸에 병이 생긴 걸 알고 나니 마음이 무척 이상했습니다.
'죽고 싶다'만 생각하고 사는데 진짜로 누가 '그럼 내가 죽여줄까?'하는 상황이 생긴 거죠.
그러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왜냐하면 가짜가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에요.
그때 저는 너무도 오랜만에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마음을 똑바로 들여다 본 것 같았어요.
신해철의 노래 가사처럼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는 그렇게 와서 '사실 나는 정말 잘 살아 가고싶어'를 실토하게 만들더군요.
'죽여 줄까?'라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 태어난 데에는 분명히 무슨 목적이 있었을 거야.
지금부터 그걸 찾아보려 해.
비로소 세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어둠 속을 헤매던 시간에도 버티게 해준 무언가는 늘 존재했음도 알았고요.
당시에는 의미가 없는 줄 알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너무나 적재적소에 일어났던 작은 일화들이 저와 세상을 연결시켜놓고 있었더라고요.
50대 아줌마가 아이돌 덕질하는 책 썼다더니 예상한(예상한 바가 있다면) 나잇값 얘기와는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요?
아줌마가 어린 아이돌 좋아라 하는 그런 나잇값 못하는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저 '방구석 나홀로 덕질' 또한 나라는 사람의 일부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 긴 세월 동안 그렇게 줄기차게 덕질을 해왔을 리 없지요.
심지어 '덕질'이라는 말조차 없었던 시절부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알아가고, 돌보는 것이 나잇값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알면 남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세상의 이치에도 다가가지요.
아직 남을 미루어 짐작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무슨 그 나이에 아이돌을 좋아해요?'라고 하면 저는 이럽니다.
'참 이상하네요. 저의 엄마가 이찬원 좋아하는 건 아무도 나잇값 운운하지 않는데 제가 아이돌 좋아하는 건 꼭 그러거든요. 이찬원이 BTS 진보다 4살이나 어린데 말이죠.'
그러면 '어 정말 그러네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에이 그래도 그렇지'라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저와는 상관없지요.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내 잣대로 판단할 이유도 설득할 필요도 못 느끼니까요.
그들의 것은 그들에게 그대로 두고 저는 저의 시간을 살아갈 뿐입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지 그것만 생각합니다.
시간 값을 알아야 나잇값을 하게 되니까요.
임플란트를 하든 틀니를 끼든 언제나 지금이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나 자신을 덕질하고 가족을 덕질하고 이 세상과 온 우주를 덕질합니다.
물론 케이팝이라는 우주에 빛나는 스타들도 빼놓을 수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