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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시청 소감

그 말 안에 담긴 모든 삶의 위로

by Sunny Sea






네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마지막 회까지 정주행 하고 나서, 나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제목부터 낯설고도 재밌었던 이 드라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 깊숙한 곳을 울리며 많은 생각을 남겼다.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땐 단순히 “누구한테 속았다"는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제주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라고 전해 듣고 난 후, 감동이 더욱 깊어졌다. 그 따뜻한 인사말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시청 소감을 쓰기 전에 혹시 내가 드라마 제목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싶어 확인 차 퍼플렉시티(Perplexity) AI에게 물어보았다. 원래 의미는 “완전히 속았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 말을 읽는 순간, 아찔함과 동시에 다행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속았수다'라는 말이 내가 처음 생각한 '속았다'라는 뜻이 아니라 '수고했다'라는 뜻만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글을 썼다면 글에 실수가 있을 뻔했다.


더 깊이 알고 싶어 이어진 나의 질문에 대해 AI는 이렇게 답했다.

“‘폭싹 속았수다’를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원래 뜻은 ‘완전히 속았습니다’지만, 특정한 제주 방언의 전용 표현이나 상황에 따라 의역되기도 합니다. 격려나 유머의 뉘앙스를 담아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으며, 문맥과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애순은 양관식이 죽은 후 딸의 도움으로 마침내 버킷리스트였던 시집 출간을 하게 된다. 그 시집 제목이 드라마 제목과 같은 《폭싹 속았수다》다. 나는 이 제목이야말로 양관식에게 딱 어울리는 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애순이 자신의 일생과 한평생 저기만 바라보며 사랑을 듬뿍 부어줬던 남편의 마음에 대해 한마디로 응축시킨 적절한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 퍼주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너무도 성실하게 해낸 양관식.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의 모범울 손수 보여준 이 남자에게, 뒤늦게나마 전하는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라는 말. 내 머릿속에는 갑자기 부산 사투리로 “욕봤다”라는 말도 이와 상통하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마도 제주 사람이나 부산 사람들이 이런 류의 말을 할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AI에게 ‘폭싹 속았수다’가 ‘수고 많았다’는 의미로 쓰일 수 있는 제주 방언의 대화 예문을 보여달라고 했다.


A: 오늘 감귤 따는 거 정말 힘들었지 야? 햇빛도 쎄고, 생각보다 감귤도 많아수다.

B: 그러게. 어깨가 빠질 거 같아수다야.

A: 폭싹 속았수다~ 수고 많았주, 정말 힘들었을 거라게.

B: 아이고, 고맙수다. 우리 서로 허는 거지 뭐.


이 짧은 대화문을 읽으면 제주 방언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약간은 외국어를 듣는 듯 두리뭉실한 의미로 다가온다. 다만 제주 방언만이 줄 수 있는 정서와 따뜻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처럼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완전히 속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상대방의 노고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표현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양관식은 그런 인물이었다. 오애순이 말만 하면 뭐든 다 해주는, 말없이 묵묵히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그의 그런 삶이 안쓰럽고 때론 너무 짠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자기도 좀 챙기면서 살지 하는 생각이 내 옆에 있는 어떤 사람과 오버랩될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 곳곳에서 내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희생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희생으로 행복한 웃음꽃이 오애순의 얼굴에 피어나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그 자체로 양관식은 보상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애순은 양관식의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좋을 때는 그녀만의 무기인 좋다는 표현을 마음껏 그 앞에서 표현한다. 그런 오애순이 있었기에 비록 모든 것이 벅차고 힘들었지만 그도 내내 행복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사랑에서 양관식과 닮은 사랑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제대로 된 가장들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 같다.


양관식에개서 나는 종종 멋짐을 본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전통적인 문화나 가치관을 과감하게 타파하는 역할을 할 때 정말 속이 후련해진다. 아마도 시청자들도 겪었으나 감히 거스르지 못했던 비슷한 환경에서 그는 과감하게 결단하고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결국에는 모두의 마음을 얻게 된다.


관식은 애순의 꿈과 자유를 위해 전통적인 가부장적 질서를 거부하고 타파한다. 그녀가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동안 그녀를 음으로 양으로 지지하며, 어머니와 할머니 등 가족 내 권위적인 인물들과 대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흔치 않은 모습이다. 따로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 밥그릇을 들고 애순의 밥상으로 돌아앉는 장면 또한 기억에 남는다.


"여자애가 자전거를 타서 뭐에 쓰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애순의 요청에 따라 딸 금명이가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도 한다. 이는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제한된 선택지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려는 행동으로, 관식이 전통적인 가치관을 깨고 가족의 꿈을 지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애순이 뿐 아니라 금명이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부모의 가치관과 평소 행동이 자녀 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오로지 애순을 기쁘게 하는 사랑의 방법으로 어떤 것이 최선일까를 늘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찐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캐릭터다. 그의 사랑을 더욱 감동적이게 만든 사람은 당연히 오애순이다. 애순 역시 시청자들이 살면서 겪었을 법한 상황들에서 여자로서 느끼는 불합리함과 갑갑함을 슬기롭게 타파해 나가는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낸다. 그래서 장면장면마다 카타르시스가 넘쳐나는 것이다. 양관식 같이 사랑에 눈먼 사람에게 오애순처럼 지혜로운 여인이 함께 했기에 망정이지 자기밖에 모르고 자신의 욕구 충족만을 추구하는 여인이었다면 양관식의 순전한 그 사랑은 싸구려 신파극에서나 볼 수 있는 불쌍해 보이는 사랑으로 전락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뭐니 뭐니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의 사랑은 결국 가족을 살리고, 아내를 시인으로 만들었으며, 자녀들에게는 깊은 감동으로 남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의 사랑을 받는 애순과 그의 가족들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참 사랑이 뭔지 몰라 손가락질당하는 사람에게조차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 닮고 싶은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제목은 이 드라마의 서사 전체를 감싸는 하나의 따뜻한 담요 같았다. “나는 몰랐는데, 당신 덕분에 이렇게 살아왔네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라는 말. 그 말 안에는 후회, 감동, 감사, 사랑, 그리고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의 삶이 이렇게 전개될 줄 몰랐는데 그 고비고비마다 당신이 함께 해주었기에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었고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라고 해석하면 될까.


마지막 화에서 양관식의 병실에서 딸과 둘이 대화하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때문에 가족의 곁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딸에게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맡기며 다정하게 대해 달라고 부탁할 때는 그의 너무나 깊은 사랑과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서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막내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아픔을 자신의 죽음의 순간까지도 가슴에 묻고 '내가 축대 쌓으러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자책하는 모습에서 당신 잘못 아니니 이제는 그 무거운 죄책감을 내려놓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마을을 위해 일하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개인의 안정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기에, 사람이기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주어진 현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에 자신이 현재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좋지 않아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순이는 애순이대로 금명이는 금명이대로 은명이는 은명이대로 막내 어린 동명이의 죽음에 대해 저마다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주변에 있는 사람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16편의 드라마를 매 회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폭싹 속았수다》는 뭐라고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하고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들을 시청자의 가슴 깊은 곳에서 마구 끌어올리는 요상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사랑을 하며 성실하게 삶을 살아내고 남을 배려하고 덕을 끼치는 부모의 품에서 자란 자녀는 혹시 지금 아프고 못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결국엔 돌아오는 것 같다. 아내 오애순과 가족 친지들을 하늘에서 바라보며 미소 짓는 양관식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러면서 그에게 이렇게 마음으로 말해본다. “관식 씨, 폭싹 속았수다.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양관식처럼 나의 웃는 모습을, 자녀들의 웃는 모습 보는 것을 가장 행복해하는, 양관식에 버금간다면 서러워할지도 모를 내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도, 마음 다해 그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정말… 폭싹 속았수다. 고맙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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