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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마주하며, 대화로 살아간다는 것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by Sunny Sea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이방인』, 민음사, p.13)


짧고 무심한 이 문장은 내 마음을 멈춰 세웠다. 뫼르소는 죽음을 담담히 진술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며 정반대의 감정을 맛보았다. 내 마음에 남은 것은 차갑게 정리된 문장이 아니라, 다 하지 못한 대화에 대한 깊은 아쉬움이었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이 진짜 소중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 그 순간, 모든 것은 관계와 대화로 수렴된다.


1. 당연했던 대화가 사라지는 순간


어린 시절, 아버지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존재였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들고 달려가면,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함께 풀어주셨다. 어떤 일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으면, 아버지는 묵묵히 들어주며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주셨다. 나의 세계는 아버지의 귀와 말에 의해 단단히 지탱되었다.


그때의 나는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삶의 일부로 당연하게 여겼다. 언제든 전화를 걸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언제든 찾아가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당연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그때 몰랐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달라졌다. 직장과 가정, 자녀 양육이라는 무게가 하루를 가득 채웠고,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를 묻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예전처럼 마음을 깊이 나누지는 못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그때 충분히 이야기 나누자' 하고 미뤘지만, 결국 그때는 오지 않았다. 시간은 항상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지만, 그 다음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2. 말을 잃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누우셨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눈빛과 고갯짓으로 이어진 짧은 대화뿐이었다. 기계 소리와 하얀 침대, 그 속에서 아버지는 말을 잃었지만, 눈빛으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셨다. 내가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움찔거리셨다. 그 작은 몸짓이 얼마나 큰 위로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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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앞둔 중학교 영어교사, 작가, CHaT 연구소 대표, 디지털튜터, 2025연구년 파견교사, 일렁이는 바다 위의 태양과 등대를 닮고자 한걸음씩 나아가는 삶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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