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에듀 써니의 북토론 성찰)
매월 첫 주 토요일 새벽은 저에게 조금 특별한 시간입니다. '베이트 호크마 하브루타 북토론' 모임으로 한 달의 문을 열기 때문이죠. 특히 일주일간의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 몸은 조금 고단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습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는 저희 부부뿐만 아니라,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며 한 주간 동안 함께 새벽길을 오가는 장로님과 권사님과 부부도 함께 계셨습니다.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단지에 도착해 두 분을 먼저 배웅해 드리고 저희 집으로 향하려는데, 권사님께서 "오늘 식구들과 볶아서 맛있게 드시라"며 정성스레 생각지도 않은 돼지고기를 건네주셨습니다. 서로를 향한 소박한 마음이 오가는 그 짧은 찰나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배고프다는 남편을 위해 나물 몇 가지를 넣고 계란을 부터 넣은 후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비빔밥을 얼른 차려주고 나니, 선물 받은 고기도냉장고로 들여보내기 전에 바로 요리해 가족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채소를 썰고 불고기 양념을 준비하는데, 아뿔싸! 노트북 화면 속 단톡방에는 벌써 6시 30분이 지나 리더 선생님의 줌(Zoom) 입장 재촉 메시지가 떠 있더군요. 8시까지 이어질 토론이기에 서둘러 밥솥을 안쳐 취사 버튼을 누르고 양념에 부리나케 고기를 재워둔 뒤에야 숨을 헐떡이며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펼친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박문재 역, 현대지성)입니다. 오늘 아침의 분주함 속에서 저는 이 심오한 지혜의 바다에 저만의 CHaT 루틴을 던져보았습니다.
1. Chunk: 행복은 '각자의 기능'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
오늘 토론의 바탕이 된 1권 7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고유의 '기능(Erg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거문고 연주자가 연주를 잘해야 하듯, 인간도 인간만의 이성적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할 때 행복하다는 것이죠.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복은 모든 기능이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온다"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마치 나사 하나가 빠지면 달릴 수 없는 자전거 트레일러처럼, 인간의 행복도 홀로 완성할 수 없는 공동체의 산물임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를 떠올려 봅니다. 그가 벌레로 변해 기능을 잃었을 때, 가족들은 그를 사랑으로 품기보다 '쓸모없는 짐'으로 여기며 사과를 던지고 외면했습니다. 결국 가족의 비정한 태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죠. 저는 이 비극을 보며 확신합니다. 사회적 행복이란 각자의 기능을 다 할 때 최고조에 이르지만, 누군가 제 기능을 못 할 때는 다른 누군가가 그 기능을 대신 감담해 줄 때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고요.
다만,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대신 짊어지는 짐이 너무 오래 지속되거나 지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일 경우에는, 돕는 사람의 행복까지도 앗아가 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모두가 함께 행복하기'란 각자의 조력이 서로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 일정 수준의 기본 조건이 충족된 상태일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고도의 지혜인 셈입니다.
2. Havruta: 신의 선물과 인간의 습관, 그 사이의 질문들
하브루타(Havruta) 대화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행복의 기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권 9장에서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설령 행복이 신들이 준 것이 아니라, 미덕이나 어떤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 얻는다고 할지라도, 행복은 가장 신적인 것 중 하나로 보인다."((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제9장, 현대지성, 43쪽)
저는 이 지점에서 저의 신앙적 관점을 피력하고 싶습니다. 행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요. 환경이 우리를 흔들지라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에게서 그 행복을 받았을지라도, 그것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노력과 습관화입니다. 신이 주신 행복이라는 원재료를 '덕'이라는 양념으로 매일 재워두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3. ThinkWise: 2,500년 전의 정치를 오늘에 그려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유를 ThinkWise(생각의 지도)로 그려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되짚어보았습니다.
"정치학의 목적은 가장 좋음을 얻는 데 있고, 정치학이 가장 힘을 쏟는 일은 시민들을 특정한 성품을 지닌 사람, 즉 고귀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좋은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현대지성, 30쪽)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정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생존'과 '소유'에만 매몰되어, 인간 고유의 탁월함(덕)을 기르는 정치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정치가 삶의 질과 성품을 돌보지 않고 '효율성'이라는 잣대만 휘두를 때, 그레고르 잠자와 같은 소외된 자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오늘 아침, 고기를 재우고 밥을 안친 뒤 노트북 앞에 앉았던 제 분주한 손길처럼, 우리의 삶도 최적화된 기능과 따뜻한 조력이 쉼 없이 교차해야 합니다.
이웃과 새벽길을 함께하며 나누는 정겨운 연대, 남편의 식사를 챙기는 분주한 사랑, 그리고 이 모든 일상에 제동을 걸고 '본질'을 묻게 하는 인문학적 성찰. 이 조각들이 CHaT 루틴을 통해 하나의 행복 지도로 완성될 때, 우리는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꿈꿨던 '최고선'의 언저리에 비로소 가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하나님이 주신 행복의 선물을 '좋은 습관'이라는 그릇에 정성껏 담아내려 합니다. 짐을 나누어 지되 서로의 행복을 훼손하지 않는, 그 절묘한 중용(Mesotes)의 지혜를 구하면서 말이죠.
C (Chunk): 기능의 연결과 지속 가능한 보완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의 고유한 기능'(1권 7장)을 인간관계로 확장합니다. 카프카의 『변신』이 보여준 비정함을 경계하며, 타인의 기능을 대신 감당해 주는 연대를 강조합니다. 단, 조력자의 행복을 앗아가지 않는 '지속 가능한 무게'와 '기본 조건의 충족'이 행복의 전제임을 명확히 합니다.
H (Havruta): 은혜와 훈련의 이중주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가, 훈련인가 하는 물음(1권 9장)에서 출발합니다. 환경을 초월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행복의 뿌리라면, 습관화된 덕의 실천은 그 행복을 지속시키는 줄기임을 깨닫습니다.
T (ThinkWise): 정치의 본질 회복을 위한 설계
'생존과 소유'에 함몰된 현대 정치의 구조적 한계를 분석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시민을 고귀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정치의 목적'을 회복하기 위해, 서로를 보완하는 공동체적 행복의 지도를 그려나갑니다.
#에듀써니 #CHaT학습법 #니코마코스윤리학 #변신 #아리스토텔레스 #카프카 #인문학성찰 #행복의조건 #하브루타 #씽크와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