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러하듯 제가 교실에 도착하기 전부터 영어 도우미 학생이 교과서를 들고 나와 큰 소리로 본문을 읽습니다. 앉아 있는 모든 학생들도 교과서를 펴서 따라 읽습니다.
매년 제 수업은 어느 정도 영어 읽기에 자신 있는 학생 중 자원한 영어 반장이 시작 종 치자마자 이렇게 시작합니다. Read aloud를 반복하는 힘을 알기에 학생들에게 체험하게 하고 싶어 제 수업 루틴으로 만든 지 여러 해가 됩니다.
이번엔 앞 단원을 마치고 처음 마주하는 본문입니다. 더구나 우주 쓰레기에 대한 내용이라 딱딱합니다. 유난히 각종 숫자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옵니다.
"선생님, 이 큰 숫자 영어로 어떻게 읽어요?"
책에 써 있는 '370,000'이란 수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제게 묻습니다. 'About 370,000 pieces of space junk were observed in 2010.'이란 문장이었습니다. 입실 후 아이들이 읽고 있는 동안 말없이 노트북 세팅을 하다 말고 제가 말합니다.
"쓰리 헌드레드 세븐티 싸우전드"라고 읽으면 된단다."
제가 한 말을 영어 반장이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고 아이들도 똑같이 따라말합니다. 문장을 계속 읽어가다가 '2010'에서 또 머뭇거립니다.
"투엔티 텐이라고 읽어도 되고 투 싸우전드 텐이라 읽어도 됩니다."
"Space junk travels at a speed of 28,000km/h.'란 문장을 읽다가 또 숫자에서 멈춥니다.
"선생님, 이거는요?"
"투엔티 에잇 싸우전드라고 읽어. 너희들이 큰 숫자 읽는 것에 약하구나. 음...고민이네."
1,000 단위까지는 어느 정도 읽는 것 같은데 그 이상 넘어가면 버벅거림 현상이 모든 반에서 관찰되었습니다.
팀 티칭하는 원어민 선생님께 저의 고민을 말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큰 숫자를 영어로 읽는 법을 따로 가르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큰 수 읽기를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물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수를 읽는 체계가 달라서 저도 아주 큰 수를 읽을 때는 한 호흡에 바로 안나오고 생각을 좀 한 후 읽어야 했기에 혹시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원어민 선생님은 자릿수 표시하는 콤마를 기준으로 덩어리 지어 쉽게 읽는다고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눈이 번쩍 뜨인 저는 원어민 교사의 도움을 받아 이 방법을 알려주는 자료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차시 정도 시간을 확보하여 본격적으로 큰 수 읽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는 반마다 이렇게 공지를 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이 큰 숫자를 영어로 읽는 꿀팁을 기억하기 좋게 선생님이 패러디송으로 만들어 볼까 해. 그런데 그동안 선생님이 만들어왔던 짧은 동요로는내용을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제작 시간도 좀 걸릴 것 같고. 너희들 졸업이 얼마 안남았는데 그 때까지 못하면 선생님 유튜브 채널에 올려 줄테니 졸업 후에도 관심 있게 보다가 올라오면 들어보렴. 혹시라도 너희들 중에서 패러디송을 만들어 온다면 선생님이 아주 기쁠 것 같아. 혹시 시도해볼 사람 없을까?"
저는 시시때때로 이런 제안을 스스럼 없이 토스하곤 합니다. 저보다 재능있는 아이들이 참 많으니까요. 그러면 열정 있는 학생들 중 가끔씩 그 공을 받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저는 시시때때로 이런 제안을 스스럼 없이 토스하곤 합니다. 저보다 재능있는 아이들이 참 많으니까요. 그러면 열정 있는 학생들 중 가끔씩 그 공을 받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제가 다른 반 친구랑 한번 해 볼게요."
평소 수업 태도가 특출나게 좋던 여학생이 말했습니다.
며칠 후 들고 온 동영상을 보고 전신에 전율이 왔습니다.
트와이스의 'TT' 가사를 패러디하여 본인들이 연기까지 하여 뮤직비디오처럼 멋지게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너무 기뻐서 주변 사람들과 영어 교사 커뮤니티에 공유하며 자랑했습니다.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 카페 등에 올려 공유했더니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남편이 이 노래를 듣고 큰 숫자를 금방 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산의 모 중학교에서는 학년 말 진도 다 나간 후 이 노래 외워 부르기 대회를 실시했다고도 했습니다.
곧바로 가사에 빈칸 넣기 학습지를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신다며 만든 학습지를 커뮤니티에 공유해주시는 피드백도 올라왔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매년 1학년 수업에서 이 노래를 활용하여 가르칩니다.
사실 인터넷에서 '숫자송'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숫자송은 많습니다. 하지만 큰 숫자와 각종 숫자를 통틀어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노래는 이 노래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다른 숫자송과 차별화를 위해 검색했을 때 바로 나올 수 있도록 쉽게 제목을 '중고생을 위한 숫자송'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숫자 관련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관련 학습 동영상과 학습지도 만들어 블로그에 공유하였습니다.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중고생을 위한 숫자송'으로 검색하면 쉽게 영상과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날짜, 연도, 분수, 소수, 수학 공식, 큰 숫자 등 각종 숫자 읽는 법을 파트별로 강의 영상도 만들어 올렸습니다. 숫자관련 강의는 모두 들어있다고 보면 됩니다.
유튜브에 재생목록으로도 만들어 놓았으므로 시리즈로 이어서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학습자에게 그리고 숫자를 영어로 읽기관련하여 가르치시는 선생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