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교사와 협력 수업 중 한 남학생이 교과서에 무언가를 써 놓고 마주 앉은 두 친구와 함께 킥킥 대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조용히 다가서니 얼른 다른 페이지로 넘기고는 안 그런 척 정색하며 필기 합니다. 슬며시 책을 들쳐보았습니다. 제 이름과 함께 욕설이 적혀 있었습니다.
학년 초부터 유독 분위기가 미묘하게 어수선한 반이어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전 주에 그 아이는 다른 분과도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학급 전체가 주의를 받은 상황입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복도로 불러냈습니다. 저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 지를 물었습니다.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욕설을 적어 놓고 웃는 지를 물었습니다. 2주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합니다.
화가 난다고 그런 식으로 푸는 것이 바람직한 지를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하며 죄송하다고 말하더군요.
"선생님, 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요. 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 순간 위로와 공감이 우선 필요한 상황임을 직감했습니다. 더 이상의 다그침은 반항만 키울 뿐 효과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우리는 수업 내내 효과적인 의사소통 능력 기술에 대해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나 전달법(I-message)입니다. 학생들은 이 기술을 이용하여 관계 회복을 위한 행동 계획서 작성하기 수행 평가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마음이 많이 아팠겠구나' 하고 공감해 주면서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리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심해도 그런 식으로 해소하는 것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아이도 동의했습니다.
마음을 진정한 후 앞으로 잘해보자고 약속하고 다시 수업에 들여보냈습니다. 함께 키득키득 웃던 두 친구는 들어와 앉는 학생을 바라보며 또 다시 눈을 마주치며 웃을 준비를 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진지한 모습으로 앉아 욕설을 지우고 말없이 수업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내 그들도 정색을 하고 수업에 임했습니다.
지금은 그 아이의 수업 태도가 그 반에서 제일 좋습니다. 대답도 제일 잘 합니다. 수행 평가 후 자기 평가와 후기에서 그 아이는 이렇게 썼습니다.
"학기 초에 제가 갈 길을 못 잡고 방황을 할 때 선생님께서 잘 타일러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영어 수업 가르쳐주세요."
사람은 누구나 화 날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화를 표출하는 방식이 잘못되면 관계는 깨어집니다.
의사소통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두었던 '분노 조절 송'이라는 패러디 송으로 아이들에게 한번 더 의사소통 기술을 생각해보도록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