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1993년에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선언하며 일제 잔재 청산과 군사정권과의 단절을 내걸었습니다. 그 첫 조치가 바로 경복궁 한복판에 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였지요. 이 건물은 일제가 궁궐의 중앙 축을 가로막아 세움으로써 조선 왕조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압도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던 상징물이었어요. 다시 말해, 서울의 중심에 세워진 이 건물은 일제의 정치적 메시지를 그대로 품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해방 이후 상황은 달랐습니다. 건물은 곧바로 철거되지 않았고,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기억을 쌓아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식민 지배의 흔적이었지만, 동시에 한 세대 이상이 공공기관으로 드나든 익숙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철거냐 보존이냐를 두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했지만, 정부는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철거를 강행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청산이라기보다 ‘없애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정당성을 선포하는 정치적 퍼포먼스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짓는 것’으로 권력을 드러냈다면, 이번에는 ‘부수는 것’을 통해 시대의 권위를 표현한 셈이었지요. 저 역시 철거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라는 절차가 생략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 흐름은 경복궁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산의 옛 총독 관저 역시 같은 명분으로 철거되었습니다. 식민 권력이 뿌리내렸던 장소들을 없애버림으로써, 김영삼 정부는 새로운 민주 정부의 정체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정치적 청산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오랫동안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국가적으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는 권위주의와의 단절을 도시와 제도 두 차원에서 병행한 것입니다.
결국 1990년대 서울은 ‘되살아난 선전의 도시’였습니다. 일제가 건물을 세워 권력을 과시했다면, 김영삼 정부는 그 건물을 허물며 새로운 권위를 드러낸 것이죠. 총독부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 복원된 경복궁의 전각들이 들어섰고, 그 빈 공간은 민주 정부가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철거 행위 자체가 도시 풍경에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덧씌운 셈입니다. 서울은 또다시 권력의 메시지를 담는 공간으로 변모했고, 그 속에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사회적 논의를 거친 후의 철거에는 동의합니다만 지하부분은 남겨서 식민역사의 현장 교육과 관광자원으로 사용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