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새로운 문화산업 전략

by 써니사이드업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국 사회 전체가 위축된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1998~2003)는 의외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철강·조선·자동차 같은 전통적인 중화학공업에 기대를 걸던 때, 정부는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영역, 바로 문화산업을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결정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내세운 것이 특징이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의 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문화가 국민의 자존감을 세우고, 국가 이미지를 바꾸며, 나아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보았죠. 공장을 다시 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국민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문화적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한국을 살릴 원동력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이 믿음은 곧 정책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1999년에 정부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애매모호하게 쓰이던 ‘문화산업’의 개념을 처음으로 명확히 규정했고, 영화, 음악, 방송, 출판,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 영역을 제도권 안에 끌어들였습니다. 동시에 중소 제작사와 창작자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 인프라 조성을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 신인 감독과 예술가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열어준 것이 중요한 전환이었지요.


실제로 성과는 곧 나타났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 같은 작품이 이 시기의 지원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장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작품도 있었지만, 다양성과 실험을 감당해 줄 제도가 있었기에 영화계 전반에 새로운 에너지가 불어넣어 졌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감독들이 바로 이 시기에 기반을 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정책의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와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포스터)

경제가 어려운 시기였기에 문화예산은 가장 먼저 줄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정부 전체 예산에서 문화예산의 비중을 과감히 늘려 1%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죠. 문화는 긴축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이 결단은 창작자들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고, 장기적으로 한국 콘텐츠 산업이 자생력을 키워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정부의 거리 두기입니다. 예산은 아낌없이 지원하되, 창작의 내용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참조한 이 정책은 예술가들이 정치적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했죠. 정부가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에 머문 것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감독과 작가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고, 상업성과 예술성을 아우르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 영화는 국내 관객을 사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점차 해외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 칸, 베니스 같은 세계 무대에 한국 작품이 소개되었고, 평론가들은 한국 영화를 ‘새로운 아시아 영화의 중심’으로 평가했죠.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K-영화’의 브랜드는 사실 이 시기에 닦인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2004년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심사위원대상(Grand Prize of the Jury)을 차지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출처: 네이버 이미지)

정부의 지원은 영화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음악, 방송,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도 자금과 인프라가 투입되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고, 게임 산업 역시 급성장하며 세계로 뻗어 나갔습니다. 단순히 제작 지원에 그치지 않고, 번역·홍보·마케팅까지 도와 해외 진출을 촘촘히 뒷받침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IMF 위기의 절망 속에서 김대중 정부가 과감히 뿌린 씨앗이 2000년대 이후 거대한 숲으로 자라난 것이죠. 많은 나라가 위기 앞에서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한국은 문화에 베팅했고, 그 선택은 훗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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