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 뉴타운 사업
도시의 풍경은 때로 정치의 언어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곧 “일을 잘한다”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은 정치적 성과로 이어지죠. 2000년대 초반의 서울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청계천 복원이었습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던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덮였던 물길을 다시 드러낸 이 사업은 서울의 얼굴을 단숨에 바꾸었습니다. 도시는 확실히 달라졌고, 시민들은 그 변화를 빠르게 체감했어요.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공사 도중 발굴된 문화재는 충분히 보존되지 못했고, 역사적 고증이나 공론화 과정도 부족했습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완공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깨끗하고 정돈된 공간이었지만, 그 아래에는 설명되지 않은 시간들이 덮여 있었던 것이죠.
이 흐름은 곧 ‘뉴타운’ 사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낡은 주거지를 허물고 아파트 단지를 세우는 이 계획은 ‘재개발’보다 훨씬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되었습니다. ‘뉴타운’이라는 단어 속에는 깨끗하고 질서 있는 도시의 이미지가 담겨 있었고, 많은 이들은 그 안에 자신의 미래를 겹쳐 보았습니다.
첫 시범 사업이었던 은평뉴타운은 강남과 강북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시장은 ‘불균형’이라는 민감한 지점을 건드렸고, 동시에 “낙후 지역에 살던 내가 아파트 분양 한 번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적 심리를 교묘히 자극했습니다.
청계천 복원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쌓은 그는 뉴타운, 대중교통 개편 등 눈에 보이는 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며 ‘성과를 내는 시장’이라는 인상을 굳혔고, 결국 대통령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오세훈 시장도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개발의 속도는 더 빨라졌고, 종로의 피맛골 같은 오래된 삶의 흔적들은 고층 빌딩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효율과 상업성이, 오랜 세월 쌓인 기억과 생활을 밀어낸 것이죠.
2008년 총선에서는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여당 후보들이 앞다투어 뉴타운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 서울시장은 오세훈이었고, 유권자들은 여당 후보들이 당선되면 시정과 국정이 잘 연결될 거라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여당은 서울에서 전체 의석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가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많은 지역이 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실제 사업은 멈추었고, 주민들은 오랜 불확실성 속에 놓였습니다. 기대했던 변화는 실현되지 않았고, 개발의 열풍은 결국 멈추고 말았죠.
이 시기의 뉴타운 열풍은 도시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고, 주민의 삶보다는 자산 가치에 집착했던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었지만, 도시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도시는 말이 없지만, 늘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때로는 정책이나 연설보다 더 강하게 기억을 남깁니다. 2000년대의 서울은 그렇게 다시 한번 정치적 선전 매체로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