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탄생
1960년대에 접어들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전쟁의 상처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남아 있었고,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데 급급했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원조 없이는 버티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과제였고,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정부는 생존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정부가 택한 길은 모든 기업을 고르게 키우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자원도, 자본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것이죠. 국가가 직접 기업을 키워내는 국가 주도형 성장 전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전략의 중심에 있었던 기업들이 바로 현대, 삼성, LG, SK 같은 지금의 재벌기업들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들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정책금융을 통해 싼 금리로 대출을 제공했고, 기업이 수출 계약을 따내면 외국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외자 차관 보증까지 서주었습니다. 기업은 위험 부담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정부는 이를 발판으로 산업을 빠르게 키워낼 수 있었던 거예요. 여기에 공장 부지를 제공하고, 도로와 항만 같은 기반 시설도 정부가 직접 건설해 기업 활동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또 하나의 성장 엔진으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해외에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면, 정부는 그 외화를 다시 기업 성장에 투자했죠.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출은 국가적 목표이자 기업의 생존 과제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매달 수출 실적을 직접 점검했을 만큼 집착했고, 성과를 낸 기업은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었어요.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자동차, 조선, 전자 같은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고,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점차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1960년대 초반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수출은 1970년대 들어 수십억 달러로 치솟았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어요.
하지만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졌습니다. 선택과 집중의 결과, 몇몇 대기업이 압도적인 성장 기회를 독점하면서 ‘재벌 중심 경제 구조’가 굳어졌던 거예요. 대기업은 정부의 보호와 지원 속에 몸집을 불렸지만,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경제력이 소수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부의 불균형이 심화되었고, 정부와 기업 사이의 유착도 점차 공고해졌습니다. 정경유착은 이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으며, 민주주의 발전에도 큰 걸림돌이 되었죠.
노동 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기업의 성장 속도를 맞추기 위해 값싼 노동력이 대거 동원되었고,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환경은 일상이었어요. 그럼에도 당시 많은 사람들은 불만보다는 “미래에는 더 나은 삶이 올 것이다”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산업화 과정의 희생이었지만, 동시에 성장에 대한 집단적 합의이기도 했던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이런 선택이 불가피했습니다.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부족한 나라가 세계 경제의 지형 속에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과감한 전략 덕분이었죠. 정부와 기업이 한 몸처럼 움직였던 국가 주도형 산업화 모델은 분명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그 시절 한국이 생존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훗날 한국을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이끈 초석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