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 기억 삼 대
아빠의 퇴근 시간은 저녁 일곱여덟 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아빠는 회식이 있는 날이 아니면 많이 늦지 않으셨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거나 각자 방에 들어가서 숙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고 있거나,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 쯤 오셨다. 그러면 우리는 별 중요하지도 않은 자기 할 일들을 한다는 핑계로 빼꼼히 얼굴만 내밀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한 번 하고는 끝이다.
그런데 이 무뚝뚝한 남매가 아빠를 반기며 뛰어나가는 날이 가끔 있었다.
'군고구마 사왔다!'
현관에 들어서며 아빠가 간식을 사왔다는 소식을 알리실 때였다.
우리 집은 간식이 많지 않았다. 건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엄마가 과자같은 간식들을 거의 사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릴 때 간식은 용돈으로 스스로 사먹던 캬라멜이나 아이스크림 정도, 청소년 시절에는 학교 매점에서 사먹던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엄마는 간식을 집에 들여놓지 않으셨다. 저녁 식사 후에는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그 후식이 대단히 달갑지는 않았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과일은 바나나나 수박, 배 정도 뿐이었는데 그 과일들은 매일 먹을 수 없던 것들이고, 때문에 동생과 나는 간식 공급에 불만이 많았던 터. 한마디로 달콤한 것에 목말라 있던 남매는 아빠가 군고구마를 사오셨다 하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특히나 아빠가 사오신 군고구마는 집에서 구운 것보다 훨씬 더 달았다.
군고구마 장수가 고구마에 설탕을 뿌렸나? 생각하며 먹는다.
속색깔 마저도 황금빛이다. 황금 설탕물에 절였다가 구웠나? 감탄하며 먹는다.
샛노랗고 김이 오르던 고구마 속살은 찐한 설탕맛이 났다.
할머니가 곁에서 김치랑 먹으면 고구마가 잘 넘어간다고 권했지만 동생과 나는 에이~ 하면서 우유랑 함께 먹었다.
설탕맛 나는 군고구마랑 김치는 안어울리지! 우유가 최고지! 황금빛 고구마를 하얀 우우와 같이 쑤욱 삼켰다.
지하철 역을 내려서 계단을 오를수록 따뜻한 공기는 점점 사라지고 이내 차가운 공기가 코트의 곳곳을 뚫고 들어와 몸의 온기를 빼앗는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가려면 내 발걸음으로 11분을 걸어야 했다. 빨리 걸으면 2분 정도 단축할 수 있다. 그 아파트 단지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녔으니 그 길을 수 천 번은 걸은 것 같은데 걷는 시간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았다. 추운 날은 그 11분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왜 우리 집은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지 않고 아파트 단지 끝에 있는 건지 마음에 안든다며, 소용없는 불만을 혼자 뇌까린다. 빨리 집에 가보려고 뛰면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맞부딪힌다. 그래서 차가운 공기와 잰 발걸음 사이의 강약을 조절한다. 바람이 얼굴에 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빠르게 걸을 수 있는 속도를 찾아 뛰듯이 걷는다. 추운 겨울, 동네 지하철 역에서 우리 집까지 걷는 그 11분은 겨울이면 늘 그렇게 길어졌다.
동네 지하철 역에서 나오면 아파트 단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돌기둥이 있다. 두툼한 두 돌기둥을 지나면 그 곳에 군고구마 장수 아저씨가 있었다. 물론 겨울에만.
군고구마 통과 가마불이 실린 수레가 하얀 김과 함께 맛있는 냄새를 뿜어내고 있다. 드럼통 같이 생긴 원통의 군고구마 가마에는 손잡이가 줄줄이 달려 있다. 손잡이를 쑤욱 잡아 빼면 그 안에 군고구마들이 담겨져 있고 밑으로는 벌건 불꽃이 보였다. 군고구마의 달짝한 냄새만큼 검은 잿가루를 날리며 빨갛게 타는 장작더미들의 모습도 강렬했다.
군고구마는 당시 가격으로 싸지 않았다. 삼 천원을 내도 고구마가 몇 개 안됐다. 비싸다고 해도 아저씨는 듣는냥 마는냥, 목장갑을 낀 손으로 거뭇거뭇 탄 군고구마를 종이 봉투에 담아 줄 뿐이었다. 나는 군고구마 장수의 약간은 도도해 보이는 그 자세가 의아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기도 했다. 군고구마는 빨리 팔려서 어떤 날은 그마저 못사기도 일쑤였으니, 군고구마를 살 수 있으면 일단 기분이 좋긴 했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군고구마 봉투를 안고 걸으면 가슴팍이 따뜻해 졌다. 너무 뜨거워서 자세를 바꾸며 안고 가야 할 정도였다. 군고구마 봉지를 껴안고 걸어가던 그 길은 길지 않았다. 품에 안은 뜨듯한 군고구마 봉지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를 즐기며 걷다보면 어느새 집 앞이었다.
주택에 산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요즘 처럼 뒷마당에 자주 나가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5월 부터 여름 기운이 느껴지더니 지난 주 부터는 해가 길어져 저녁식사 후에도 날이 꽤 밝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시즌이라 갈 곳도 없다보니, 결국 세 식구는 늘 주말 저녁에는 마당행이다.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마당 살림에도 관심이 늘었다. 물이나 주고 잔디 정리나 하던 마당 한 켠에 자리를 내어 파를 심고 창고에 접혀 있던 야외용 식탁과 파라솔도 꺼냈다.
급기야는 캠프파이어를 흉내낼 요량으로 불화로까지 꺼내어 놓았다. 세심하게 계획된 일이 아니다 보니 급하게 쓰다 남은 장작 나무를 찾아 넣고 마당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몇 개 주워 불을 지폈다. 이 작은 불화로는 원래 마당에서 분위기나 내기에 적합한 작은 것인데 장작이 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고구마 생각이 났다.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우리는 마침 한국 도매상으로부터 한 상자나 주문해 놓은 고구마를 몇 개 꺼내어 호일에 둘둘 감아 장작 속으로 던져 넣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달콤한 고구마가 먹고 싶어서 미국 슈퍼마켓에 가서 얌(yum)을 산 적이 있다. 겉보기에 고구마랑 비슷하게 생긴 데다가 스윗 포테이토라고 하길래 샀다가 보기좋게 배신당했다. 얌은 물먹은 고구마 맛이다. 물을 먹어도 한참 먹었다. 차라리 감자처럼 담백한 게 낫지. 이건 뭐 단 것도 아니고 안 단 것도 아니고. 정말 딱 한 번 사보고는 다시는 사지 않았다. 다행히 서부로 이사오게 되면서 한국인들이 많은 동네에 살게 되니 '진짜 한국 고구마'를 살 수 있게 되었고, 지금 그 한국 고구마가 한 상자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오븐도 아니고 냄비도 아닌 장작에서 굽는 고구마라니!
아이는 나무에 불 붙이는 재미와 불맛이 나는 군고구마를 먹는 재미에 신이 났다. 나도 캠핑 갔을 때나 장작나무에 구운 고구마를 먹어보았지 집에서 해보기는 처음이다.
마음이 풍선같이 두둥실해진다.
아이를 재워야 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주말이고 군고구마를 굽는 날이니 모른척 넘어간다. 늦었으니 간식은 안된다는 규칙도 넘어간다. 세 식구가 마당에서 입천정이 데일까 후후 불어가며 군고구마를 까먹는다. 맛있어서 신이 나는건지 신나게 구워서 맛이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사오시던 군고구마가 떠올랐다.
아, 원래 군고구마는 황금설탕에 절인 맛이었지!
불화로에서 피어 오르는 숯나무 연기와 고구마 향이 버무려진다. 불 맛이 곁들여진 이 달콤한 군고구마 맛을 한국인이 아니면 누가 알랴?
따뜻한 추억과 달콤한 맛에 취해 내가 가지고 있던 염려와 근심들을 장작더미에 태워서 날려버린다.
아빠의 품에서 건네지던 황금빛 행복이 이제 내 아이에게도 달콤하게 남겠구나! 찐한 행복감이 황금빛으로 걸러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