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가르칠 세 가지 음식

사랑한다면 요리를

by 굳찌

우리 아들은 천진난만 개구쟁이 초등학생이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영혼 깊은 곳으로 부터 충만함이 차오른다. 나는 아들이 자신을 스스로 잘 돌보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래서 배울 것 천지인 세상에서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아이에게 "세 가지 요리"를 가르치기로 했다. 요리사가 목표가 아니므로 일단은 세 가지면 충분할 것 같다.


첫번째 음식은 미역국이다. 우리 식구 모두 만장일치로 골랐다. 아이는 미역국을 좋아해서 찬성. 내겐 미역국이 사랑받는 상징이라서. 남편에겐 가족이라면 서로에게 꼭 베풀어야 할 생일 의식이기 때문에.


내게 미역국은 왜 사랑의 상징이 됐을까?

아이는 수천 억 시간 속에 두 남녀가 만나 사랑해서 낳은 존재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부모에게는 아이가, 서로는 서로에게 아름다운 우주다. 서로의 생명이 서로의 존재로 인해 빛나고 의지가 되는 관계다. 그러니 엄마인 내가 그 큰 기쁨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아이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 엄마 미역국이 최고 & 어느 교회에서 먹었던 홍합 미역국도 넘 맛있었던 기억


하지만 아이들이란 그런 의미를 알 수 없는 존재다. 자신이 받고있는 커다란 사랑을 모른다. 모르고 마음껏 낭비하는 그 천진난만함이 아이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에게 사랑의 언어 하나쯤 가르쳐 주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작은 표현. 미역국이 그 일을 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이일 때는 다 알 수 없겠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이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면... 자신이 먹은 수 천 그릇의 미역국이 사랑이었음을 혹 알게 되겠지. 엄마에게 배운 미역국은 아이의 손맛으로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도 커서 어른이 되면, 일 년에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두번째 음식은 전복죽이다. 전복죽은 속을 부드럽게 달래주고 보양식으로도 좋다. 몸이나 마음을 보위하고 싶을때 선뜻 해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 한 가지를 골랐다. 다행히 아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살다 보면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엄마가 옆에서 늘 해주면 좋겠지만, 미국에서는 대학 입학만 하면 바로 독립이다. 그러니 지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스스로를 위할 수 있는 음식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여의치 않아 전복 대신 소고기죽이나 치킨 스프여도 괜찮다. 요지는.. 부모가 당장 달려가서 돌봐 줄 수 없을 때, 혹은 뜨끈하고 부드러운 무엇이 필요할 때, 그런 때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싶다.


평생 좋은 것, 귀한 것만 먹고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 마음




세번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한 가지를 고르게 할 작정이다. 지금은 스시랑 떡국을 가장 좋아한다. 아직은 어린이라 입맛이 변하겠지. 좀 더 크면 제일 좋아하는 음식, 언제 먹어도 맛있는 음식, 먹을 때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음식, 그런 최애 음식이 생길 것이다. 그 중 거창한 것 말고 간단한 것으로 하나 연습시켜 줄 요량이다.

요즘은 떡국을 제일 좋아함.


나같은 경우는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지치면, 매운 떡볶이를 해먹거나 소고기를 잔뜩 구워먹는다. 남편은 뜨끈한 국물 음식을 찾는다. 간단하지만 나를 풀어주는 음식 하나는 휘리릭 해먹을 수 있어야지. 물론 나처럼 소고기 구워먹기에 빠지면 요리 안배워도 되긴 하겠구나.

숯불구이 한우가 먹고 싶은 밤...


아무튼 최애 음식을 내가 만들어 먹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성인이라는 한 표시가 아닐까?

부모 슬하에서야 상관 없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에게 나의 최애 음식을 의지해야 한다면? 내 행복을 누군가에게 늘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 아닌가? 음식을 해줘야 할 사람이 마음이 안내켜서 안해주면 그땐 어쩔텐가? 그냥 못먹고 마는건가?


이건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결혼을 했다고 치자. 마침 아내가 요리를 좋아하고 입맛에 맞게 음식을 하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아닐 확률도 반이다. 사실 그건 너무 도박같은 기대가 아닌가 싶다. 나만해도 신혼 초기에는 남편이 김치볶음밥을 하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사람이라....


한참 전이지만 잊을 수 없던 그날, 내가 미국에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 몰랐던 그 날. 우리가 지낼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였다.


내가 기숙사를 둘러보고 쉬는 동안 남편은 늦은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준비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뉴욕시티를 바라보며 환상적인 요리를 먹은 것도 아니고, 김치볶음밥을 대단히 좋아하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달걀 프라이가 귀엽게 올려져 있던 그 김치볶음밥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럴 줄 몰랐는데 살면서 문득 문득 그 날의 김치볶음밥이 생각난다. 아마 많이 행복했던 것 같다.


그렇다. 어쩌면 내게(그리고 남편에게) 사랑의 언어는 "음식" 같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열렬히 사랑해도 열렬히 주문/배달해 먹을 뿐인 걸 안다.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음식이 거의 아무 역할도 안하는 사람들도 많다. 안다.


그런데 내겐 따뜻하고 맛있는 한 끼의 정성스런 식사가 마음이고 선물이다. 무엇보다 '내 입맛에 맞는 요리'는 의외로 먹기 쉽지 않다. 그것이 비록 미역국 하나 볶음밥 한 그릇이라도 결코 하루 아침에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노하우와 연습이 필요하다. 정성은 필수고.



그리고 어디 맛 뿐이랴.

함께 요리하는 시간도, 그 맛을 기대하는 마음도 모두 사랑의 연습으로 이어진 행복이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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