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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썬 Jul 19. 2021

조금 덜 부지런하면 안 될까?

뼈아픈 취린이의 고군분투 #1

    이리저리 방황하는 삶도 오래해선 안 된다. 


    새내기 때처럼 내게 남겨진 합법적으로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작년처럼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휴학을 한 것도 잠시, 곧 복학을 앞에 둔 나는 대학교 4학년, 취업 전선에 뛰어들 나이가 왔다. 문제는 나이는 찼는데 내가 대체 어떤 길로 걸어가야할 지 모르겠단 점이다. 아니,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교복 입고 지냈을 때 열심히 공부하며 살았으니 그 보상마냥 대학 와선 실컷 놀았을 뿐인데, "경험"이란 게 부족해져버렸다. 분명 난 내 삶의 하루하루를 허투루 쓴 적은 없는데. 참나. "스펙"이라고 분류되지 않는 경험은 내게 삶의 교훈을 주지 않았단 뜻인가? 우리 청춘에겐 시행착오나 남들이 가지 않을 길을 도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단 말인가? 아님 쉬지 않고 공부했으니 이어서 쉬지 않고 취업을 준비하란 뜻이었나? 주민등록증은 어디에서나 뚫리는 나이지만 자유로움은 없다.


    요즘은 취업을 위해선 학벌, 학점 등이 중요한 세상이 아니다. "나만의 경험" "나만의 이야기" 우리만의 썰을 듣고 싶어하고, 우리만의 특기와 경험을 요구한다. 고등학교 때와 똑같다. 생기부에 작성할 동아리, 봉사활동, 수상경력처럼 대외활동, 공모전과 같은 활동들을 보여줘야한다. 쉬지 않고 움직여서 나의 이력을 채워나가야 하고 자꾸만 도전해서 한 줄이라도 더 쓸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중구난방으로 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하고픈 직무와 결이 맞는 그러한 활동들이 진정한 스펙으로, 진정한 경험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수료증은 필수. 혹자는 당연히 기업 입장에서는 준비된 사람을 뽑으려 할테니 마땅한 준비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나름대로 시간이 부족했고 아직까지 아쉽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만으로 고작 21년 남짓 살아왔는데 그 시간동안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게 가능한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시선, 명예, 연봉, 안정성 등등 각종 요소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모든 면에서 최대한 완벽한 직장을 구하는 게 더 중요한 세상인 것 같으니까.


    오랜 꿈을 위하여 짧게나마 고시도 준비해봤지만 자신이 없어서, 나에겐 벅찬 일을 괜히 꿈만 크게 가진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도전하고 공부하고 포기하는 과정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눈물로 지새웠는 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너무나 아팠고 비참했다. 외로웠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고. 내가 고작 이정도라니. 내 의지가 이거 밖에 안 됐다니. 무려 초등학교 때부터 내 장래희망란을 차지하고 있던 외교관이란 거대한 꿈을 놓아주는 일은 나 역시 쉽지 않았다. 그렇게 고통 속에 몸부림 치며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니 지원자격조차 되지 않는 활동들이 많았다. 컴퓨터 활용 자격증도 없고 포토샵 자격증도 없다. 마케팅 직종 경험은 당연히 전무. 전공은 비상경 문과. sns 링크를 업로드 하라는데 페이스북은 안 쓴지 오래, 인스타그램은 하나는 내 일상, 하나는 교환학생 일기를 위한 계정. 일상용 계정을 대외활동으로 쓰면 난 내 소중한 하루를 어디에 기록하지? 울며 겨자먹기로 결국 난 어제부터 스펙용 블로그를 시작했다. 세상에나.


꽃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던 작년 봄. 귀국 이틀 전.

    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바람내음 즐기는 삶이라고 답할 것 같다. 전세계 모든 나라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훅 하고 들어오는 각자만의 느낌이 있다. 바람의 결이 다르다. 난 그런 바람들을 따라 전세계를 여행하고, 글을 쓰고, 문화를 배우고, 자유로이 표현해내는 삶을 살고 싶다. 악기도 하나 배워 노을이 붉게 물드는 풍경을 배경으로 거리의 악사마냥 연주도 한 번 해보고 말이다. 파리에 가면 베레모에 빨간 플랫슈즈, 청바지를 입고 바게트 빵을 앞바구니에 담은 자전거를 타며 흥얼거리는 삶을, 런던에 가면 괜히 우산 하나 들고 포멀한 옷을 입은 삶을, 뉴욕에선 선글라스 딱 끼고 힐에 과감한 옷을 입은 삶을. 아주 게으르고 여유롭게, 그리고 낭만적이게.



    현실이 허락해주지 않는 꿈과 이상을 가진 나는 오늘도 바삐 움직여야 한다. 당장 오늘 지원마감인 대외활동 지원을 위하여. 덜 부지런한 삶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 살아가는 일개의 조그마한 인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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