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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킹맘 Jul 24. 2019

기술의 시대

본격 영업하는 글

 서대문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서대문 족발이다. 5호선 서대문역 7번 출구 앞에 있었던 서대문 족발은 약간은 허름한데다, 대화가 불가능할 만큼 매우 왁자지껄했지만, 따끈따끈 야들야들한 족발과 바삭한 녹두전이 기가 막힌 곳이었다. 몇 년 전 새로 건물을 지어 이전했으나 달달하고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족발의 맛은 변함없었고, 가끔씩 그 맛이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작년 여름, 서대문에서 ‘글쓰기의 본격적인 잔기술’을 듣고 나서부터 서대문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달라졌다. 이제 나는 ‘서대문’하면 ‘족발 냄새가 배어있는 취기 어린 밤’ 대신 ‘뿌듯함과 두근거림이 녹아있는 희망찬 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글쓰기의 본격적인 잔기술’이란 무엇인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가 최민석 작가님의 유쾌한 글쓰기 클래스를 말한다. 이 클래스에서는 위트가 담긴 짧은 에세이 쓰는 법을 소설가 최민석 작가님으로부터 속성으로 (그것도 잔기술 위주로) 배울 수 있다. 제목만 들어도 B급 느낌이 물씬 나겠지만, 의외로 이 강의에는 ‘글쓰기의 본격적인 잔기술’이라는 혁명적인 교재가 사용된다. 작가님이 직접 집필한 이 교재는 강의를 수강하기 전에는 그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 나는 작가님의 강의보다는 ‘비매품’ 교재의 정체가 너무나도 궁금해 이 강의를 수강하기로 했다.


 서대문 경향신문사 사옥의 한 천정이 높은 방에서 강의가 이루어졌다. 함께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했는데, 나 같은 직장인부터 정년퇴직한 어르신,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학생, 현숙한 중년의 주부, 바쁜 시간을 쪼개 달려온 풋내기 의사 등 나이와 성별, 직업이 모두 천차만별이었다. 환경도 일상도 다른 사람들은 몇 주간 한 교실에 모여, 한 시간은 수강생이 직접 써서 제출한 숙제 중에서 엄선된 몇 편의 글을 읽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작가님으로부터 수업을 들었다. 최민석 작가님은 예의 그 혁명적인 교재로 본격적인 잔기술을 가르쳐주셨는데, 정말 얼마나 체계적이었는지 마치 논술학원에 다니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정말이지 명강의였다.


 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강의도 강의였지만, 나는 다른 수강생들의 글을 읽는 것이 참 좋았다.(작가님 죄송합니다. 명강의는 맞습니다.) 통성명을 한 적도 없고,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사이도 아니었지만 다른 수강생의 삶과 생각이 묻어있는 글을 접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 같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역사가,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의 행복이 글을 통해 느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것보다 더 깊은 이해가 생겼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적립되었으며, 더불어 나의 세계와 경험도 넓어지는 듯했다. 너무 잘 쓴 어떤 글을 읽을 때면 자극을 받기도 했고, ‘와!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지? 궁금하다. 알고 싶다. 친해지고 싶다!’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렇게 수업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업무와 육아로 가득 찬 나의 일상. 작은 여유 하나 없이 빡빡한,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도 ‘꿈 비슷한 것’도 잊힌 지 오래였나 보다. 나에게 글쓰기 교실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창이었고, 잊어버린 꿈을 다시 길어 올리는 샘이었고, 잠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귀가 길, 깊은 밤의 어둡고 적막한 도시는 무언가로 반짝반짝 빛나는 듯했다. 서대문역에서 떠드는 약간은 상기된 취객들을 스치며, 서대문 족발을 뜯던 나의 과거도 스쳐가고, 이제 나의 머릿속엔 글과 사람과 꿈이 자리해있었다.(사실은 다음 주까지 제출해야 할 숙제 때문에 머릿속이 꽉 차있기도 했다.) ‘나’로서 ‘살아있다’는 느낌, 무채색 내 삶에 어떤 색채들이 새롭게 더해지는 느낌이 물씬 드는 밤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그러셨나 보다. 사람은 모름지기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글쓰기의 잔기술 같은, 그런 예술 같고 마술 같은 기술 말이다.



추신. 8월부터 서대문 경향신문사에서 ‘글쓰기의 본격적인 잔기술’ 여름학기가 시작된다. 이미 두 번이나 강의를 수강한 나는, 저번처럼 작가님이 왜 또 왔냐고 하실까 봐, 너무 창피하고 죄송스러워서 3수강하려는 마음을 애써 참고 있다.

그건 그렇고, 글쓰기의 본격적인 잔기술은 여기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http://www.edukhan.co.kr/writing/ (네. 여름학기는 9월 18일에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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