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낯선 땅,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만나다
2000년대 초, 낯선 뉴질랜드 땅에 막 발을 디뎠을 무렵이었다. 서툰 영어를 한마디라도 더 주워 담아보려, 매일 저녁 TV 뉴스 앞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 속 아나운서의 멘트에 나는 '내가 뭘 잘못 들었나?' 하며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어제 저녁 헬리콥터 소리에 잠을 깬 분들이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친 키위새 한 마리를 긴급 이송하느라 띄운 헬기였습니다. 모쪼록 무사히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고작 새 한 마리 다친 일로 헬기를 띄운 것도 모자라, 그 소음으로 고요한 밤을 방해받았을 시민들에게 안부를 묻다니. 하루가 멀다 하고 굵직한 사건·사고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한국의 뉴스에 익숙했던 내게, 그 다정한 소식은 낯설다 못해 경이로운 충격이었다.
‘이게 정말 뉴스거리가 된다고?’
하지만 자극적인 보도 대신 이런 소식이 뉴스 한 자리를 채운다면, 고단한 하루 끝에 걱정보다는 작은 미소를 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날지 못하는 이 작은 새가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각별하고 애틋한 상징인지. 본래 천적 없는 숲에서 평화로이 거닐던 새가 외래종 포식자의 유입으로 위기 앞에 놓이자, 온 나라가 나서서 그 연약한 생명을 품어 안았다는 사실도 말이다. 동전 뒷면에도, 국가대표팀 유니폼 위에도 새겨진 그 둥글고 연약한 몸집은 단순한 보호종을 넘어, 지켜내야 할 이 땅의 자부심이자 살아있는 영혼과도 같았다.
언어는 결국 문화라는 토양 위에 뿌리를 내리기에, 그 결을 알아야 들리는 법. 언어와 문화의 틈새에서 어리둥절하던 이방인인 나는, 그 뉴스의 맥락을 이해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이 나라에서도 가슴을 쓸어내릴 뉴스들이 종종 들려온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그때의 뉴스가 그리워진다. 다친 새가 무사히 회복되기를, 부러진 다리가 잘 아물기를 온 국민이 조용히 바랐을 그 밤.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 보이던, 그 시절의 뉴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