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일까 행복일까
예전에 한 지인이 본인이 다른 사람들 (그녀는 그 사람들을 범인이라 지칭했다)과는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기에 친구를 많이 사귀기도 그들처럼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 울고 웃기도 사회가 가진 가치관과 자신을 일치시키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책을 많이 읽었고 가끔 자신을 과대평가했으며 이상한 논리들을 펼치곤 했다. 하지만 딱히 그녀가 타인들보다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저 책을 많이 읽은 나르시시스트였다. 결핍으로 가득 찬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마음의 벽이 얼마나 두꺼운 지 몇 년을 북클럽을 함께했지만 한치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멤버들 중 한 명과 틀어져 그녀에게 나가달라고 말했고 그 사실이 폭로되자 본인이 못 견디고 탈퇴해 버렸다.
서머셋 몸의 인생의 굴레에서에 보면 절름발이인 그가 진짜 행복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저 평범하게 섞여서 내가 너무 다른 존재라고 시시각각 느끼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내가 집단과 사회의 보편적 정서에 어울리는 가치관과 성격을 노력하지 않아도 갖춘다면 그 삶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외모 또한 크게 흠잡히지 않는다면 편할 것이고.
나는 x세대에 20대를 보내며 별로 순종적이지 못해서 직장이나 결혼생활에서 고생을 했었다. 요즘 태어났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반항이었다. 칼퇴근이라던지 싫은 것을 싫다고 한다던지 회식에 가지 않는 것들. 시어머니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 자유분방한 옷차림 등등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그녀를 좀 더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방어적 성격은 그녀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또래와 조금씩 다른 라이프스타일과 사고방식으로 내 존재가 다르다고 인식될 때가 있다.
여전히 에너지가 넘쳐서 아줌마들의 여기저기 아프다는 푸념 앞에 입을 닫게 되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이 많아 지쳐가는 중년 아줌마들과의 대화가 재미없어 자기도 한다.
어쩌면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행이라기보다 성장할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은 편안하며 별다른 고뇌를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평범한 일상 속에 안온하게 살아가다 보면 삶에 대해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이들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의 가치관이 일치하지 않는 자점을 통과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땐 외딴 행성에 홀로 있는 듯 이질감을 느낄 것이며 타인 앞에서 완벽한 페르소나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 염증이 날 수도 있다
내가 존재가 인식될 만큼 고독함을 느낄 때야 말로 나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나의 존재에 대해 깊이 사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타인에 대해 좀 더 연민을 갖게 해 준다. 타인과 삐거덕 거릴 때야 말로 자신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리고 그 시간에서 나의 재발견이 이루어진다.
어쩌면 북클럽을 나간 그녀가 혼자만의 시간에서 충분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의 존재가 느껴져도 타인과의 다름에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모습으로 어느 날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다른 존재는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