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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을 읽고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지음/돌베개/2004)

과제물을 작성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은근하게 느껴지는 책 냄새가 좋았다. 그 냄새에 취해 덩달아 기분도 좋아지던 차에 ‘강의’를 발견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보려고 했던 책이라서 그런지 ‘강의’란 제목이 눈에 확 띄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해서 글을 쓰는 생활을 반복하며 틈틈이 책을 읽었다. 책은 재미가 있었다. 동양사상을 책 한 권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저자의 필치가 좋았다. 그가 전하려는 생각과 마음을 느끼는 것이 즐거웠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에서 동양고전 강독 강의를 한 내용으로 책을 엮은 것이다. 교양강의의 성격에 맞게 우리가 어떻게 동양고전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담고 있다. 동양사상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그 개별적인 내용들을 어떻게 통합해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담고 있어서 처음 동양고전을 접하는 입문자가 보기에 적당한 책이다.

 

그래서 나는 「주역」 , 「논어」 , 「맹자」 , 「장자」 … , 이들 고전의 개별적 내용보다는 이들 사상을 꿰뚫는 저자의 통찰을 읽는 것에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동양고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저자는 ‘강의’의 서론에서 자신이 하게 될 고전강독이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한 근본적인 담론을 주제로 할 것임을 밝힌다. 그리고 고전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우리의 당면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동양 사상의 특징으로서 인간주의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인문적 가치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인성人性의 고양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있는 사회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고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외부에 어떤 초월적 가치를 상정하고 그 아래에 인간적 가치를 배치하는 그런 구도가 아닙니다. 최고의 가치가 바로 사람과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규정하는 인성이란 한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간관계에 의하여 구성됩니다. 인성은 개인이 자기의 개체 속에 쌓아놓는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成) 것이지요. 「논어」에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란 글귀가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덕성德性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동양 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仁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여하튼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인성이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의 의미라는 것이 동양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성이란 개념은 어떤 개체나 존재의 속성으로 환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장場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습니다만 요컨대 동양적 인간주의는 이처럼 철저하게 관계론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사회적 변화는 사상 투쟁에 의하여 시작되는 것이며 사회적 변화는 사상 체계의 완성으로 일단락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연속과 단절, 계승과 비판이라는 중층적 과정을 경과하는 것이 사상사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이처럼 복잡한 전개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체적 입장과 실천적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의 새로움이란 단지 이론에 있어서의 새로움이 아니라 입장과 자세에 있어서의 '새로움'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창신創新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지적 관심은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실천적 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창신의 실천적 과정이 보다 유연하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창신이 어려운 까닭은 그 창신의 실천 현장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창신은 결과적으로 온고창신溫故創新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곡선의 형태로 수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조와 우상을 과감히 타파하는 동시에 현실과 전통을 발견하고 계승하는 부단한 자기 성찰의 자세와 상생의 정서를 요구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고전 강독이 바로 그러한 자세와 정서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좋은 사람은 좋은 사회, 좋은 역사와 함께 만들어지는 것임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성의 고양은 그런 뜻에서 '바다로 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바다로 가는 겸손한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판적 성찰이 단지 성찰에 그치지 않고 근대사회의 존재론적인 구조에 대한 철학적 체계로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체계적인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였을 경우에야 비로소 우리 삶의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감염 부위를 수시로 발견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연성은 우리의 시각을 '여기의 현재'(here and now)에 유폐시키지 않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친 전체적 조망과 역사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동양고전의 독법에 있어서는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성찰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책 '강의' 에는 수많은 사상가의 철학적 사유들이 개별적 주제로 담겨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 두 가지를 기억하고자 한다.



1. 산과 강은 오래된 친구입니다.


출처 :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지음/돌베개/2004)


지자는 눈빛도 총명하고 사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며 특히 사물의 변화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자는 일단 앉아 있는 사람으로 형상화됩니다. 지자가 서 있거나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임에 비하여 인자는 한 곳에 앉아서 지긋이 눈 감고 있는 듯합니다. 수고롭지 않은 나날을 보낼 것 같은 인상이지요. 이러한 비유가 너무 문학적인 설명입니까? 인자는 한마디로 세상의 무궁한 관계망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지자는 개별적인 사물들 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4장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인자는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여야 할 모습이다. 앉아서도 세상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2.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하다.


출처 :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지음/돌베개/2004)


저는 한참 만에야 이 구절의 진의를 알아냈어요. 다름 아닌 각성覺醒입니다. 엄정한 자기 성찰입니다. 천하가 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불치병자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깨닫고 자식만이라도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참담할 정도로 가슴을 적십니다. 엄중한 자기 성찰과 냉철한 문명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7장 장자의 소요」


자신에 대한 엄정한 자기 성찰은 우리의 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진짜 자기 모습을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참된 성장은 냉철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상'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아본다.


강의 중에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기억되지만 한 사람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가슴(heart)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심에 있다는 의미는 사상을 결정하는 부분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 머리(head)가 아니라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사상은 감성적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사상은 이성적 논리가 아니라 감성적 정서에 담겨야 하고 인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성과 인격은 이를테면 사상의 최고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서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 존재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사상의 최고 형태는 감성의 형태로 '가슴'에 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성은 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일차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이며 그런 점에서 사고思考 이전의 가장 정직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대응은 사명감이나 정의감 같은 이성적 대응과는 달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도서정보 :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지음/돌베개/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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