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화된 세상에서 늦깎이 제너럴리스트가 성공하는 이유
한동안 주식, 부동산과 같은 경제서적 위주의 독서만 하다가 오래간만에 자기계발서를 한 권 손에 들었다. 겉표지가 초록색 하드커버로 확 눈에 들어오는 데다가 제목 또한 왠지 모르게 끌리는 책이었다. 빼곡하게 글자로만 채워진 페이지 수가 457페이지에 달하는 제법 두꺼운 책은 그렇게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데이비드 엡스타인이 쓴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은 내가 무척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의 연속이었다. 1장부터 12장까지 모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례의 나열이었지만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나는 내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던 현재의 고민을 해결했고, 나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삶의 발전을 위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더 다양한 맥락에서 학습할수록, 학습자는 더욱더 추상적 모델을 구축하며, 구체적인 사례에 덜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학습자는 전에 접한 적이 없는 상황에 지식을 응용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창의성의 본질이다.
출처 : 데이비드 엡스타인,『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2020, 116쪽
나이는 마흔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건가? 잘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치열하게 고시 공부도 해봤고, 재취업도 해봤으며, 작가로서 존재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글도 써봤다. 결혼해서 찐하게 남자의 육아도 해봤고,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는 내집마련도 했다. 근데 뭔가 도드라지게 이룬 게 없는 것 같다. 너무도 문안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인 것만 같다.
지금의 나이쯤 되면 무언가 탁월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내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 앞에서 확신에 찬 연설을 늘어놓는 삶을 살 줄 알았는데 연설은커녕 이것저것, 안 해본 것이 없는, 진지하게 고민하던 인생의 조각들만 늘어가고 있었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열정과 끈기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어느 운수 나쁜 날이 포기하라는 신호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관심의 변화, 초점의 재조정이 불완전함과 경쟁에서의 불리함을 의미한다는 생각은 단순하면서 획일적인 타이거 이야기로 이어진다. 가능한 한 일찍 선택해 고수하라는 것이다. 반 고흐가 습관적으로 한 것 같은, 그리고 육사 졸업생들이 지식 경제의 여명기 이래로 해온 것 같은 방향 전환을 통한 새로운 인생 경험은 덜 산뜻하게 들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야기다. 거기에는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을 기회를 높여 주지만, 언뜻 들으면 매우 불리한 인생 전략처럼 들리는 행동이 수반된다. 바로 단기 기획이다.
출처 : 데이비드 엡스타인,『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2020, 209쪽
한번 붙잡으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우직하게 파고드는 편인데 어느 단계가 되면 여지없이 다른 쪽에 관심이 간다. 삶에 대한 열정이 넘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과 관심에의 욕심은 나의 일상을 언제나 바쁘게 만든다.
이제는 좀 명확하게 우뚝 선 존재로 자리 잡고 싶은데 아직도 그 모습은 멀게만 느껴진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단어가 가끔 머리를 스치며, 마음을 다잡게도 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 세상 속에서의 존재감과 스스로에 대한 결핍감은 무기력이라는 이불을 한 번씩 꽁꽁 끌어안게 한다.
제아무리 고해상도 그림이라고 해도 커다란 그림 퍼즐의 작은 조각들을 따로 떼어놓고 보듯이 하면, 인류의 가장 큰 도전 과제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우리는 열역학 법칙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산불의 번짐을 예측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세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알지만, 세포로 이루어진 한 사람이 어떤 시를 쓸지는 예측할 수 없다. 각 부분만을 근시안적으로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건강한 생태계는 생물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전문화를 낳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폭넓음의 등대들이 있다.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가 말한 삶을 사는 이들이다. <어떤 도구도 전능하지 않다.《모든》문을 여는 마스터키 같은 것은 결코 없다.> 그들은 어느 한 가지 도구를 휘두르기보다는, 전체 도구 보관소를 지키고 도구를 더 모으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초전문화 세계에서 레인지의 힘을 보여 준다.
출처 : 데이비드 엡스타인,『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2020, 374쪽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늦깎이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꾸만 변하는 목표와 좀처럼 바뀌지 않는 현실에 지쳐있을 때 "늦깎이 천재"라는 단어는 내게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현재를 지속할 강한 동기가 되었고, 삶의 구석구석에 관심을 뻗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의 도구였다.
조기 교육이라는 종파로부터는 그런 유형의 보호를 받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문화하므로, 일찍부터 전문화에 매달리는 것이 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조기 교육 종파에 맞서서 균형을 잡아 주는 일을 하는 개척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을 다 갖추기를 원한다. 깊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갖추면서 정신적 방랑을 하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받으면서도 제임스 플린의 과학적 안경을 활용할 폭넓은 개념 기술을 갖추고, 학제 간 교배의 창의적인 힘을 지니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초전문화와 동의어인 분야들에서도 타이거의 추세를 뒤집고 싶어 한다. 그들은 발견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출처 : 데이비드 엡스타인,『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2020, 384쪽
도서정보 :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데이비드 엡스타인 지음/이한음 옮김/열린책들/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