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여행의 이유'를 읽고
'여행의 이유’는 김영하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p212)라고 밝혔듯이 ‘여행의 이유’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경험과 성찰을 담은 책이다.
“그래서 일상사가 번다하고 골치 아플수록 여행지의 호텔은 더 큰 만족을 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만 같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p.66)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p.110)
어린 시절, 밖에 나가 놀기보다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고, 어른이 된 후에도 여행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도 별로 없었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차를 타면 겪게 되는 멀미도 여행을 멀리하는 데 한 몫 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일상이 힘들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면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운전을 하면 멀미가 안 생기기 때문에 내 차로 친한 지인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예쁜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숙소에서 밤이 깊도록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작가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그 토끼굴 속으로 뛰어들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주인공의 운명을 뒤흔드는 격심한 시련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어 현실의 여행지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p.26)
요즈음 나는 책으로의 여행에 빠져 있다. 주말에는 몇 권의 책과 공책, 노트북을 들고 동네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생각에 잠기다 보면 어떤 여행에서도 느껴 보지 못했던 기분 좋은 피로감과 나른함, 그리고 충만함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가는 듯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언젠가는 한 달,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읽고 싶은 책들 실컷 읽다가 지치면 산책을 하는 그런 여행을 꼭 하고 싶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중략)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p117)
이제까지는 '여행의 장소와 횟수'를 중요하게 여기고 부러워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여행의 참된 의미는 ‘어디를 갔고 무엇을 경험했는가' 가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는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그 깨달음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는 시대에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말하는 여행의 이유를 곱씹어 보고 ‘내가 여행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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