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는 온갖 듣기 좋은 말은 남들에게 다 해주고 온갖 모진 말과 무뚝뚝한 표현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한다는 거다.
-드라마 ‘겨우, 서른’ 3화 중에서
오전에 복지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 잡혀 있는 정기 방문이 있었다. 각종 서류에 보호자 서명과 사인을 하고 난 후에 드링크 한 병을 드시라고 건넸다.
잠시 후에 그분이 간다는 인사를 하니까 엄마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거실로 나오셨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요양보호사에게 ‘식탁에 있는 천혜향을 드릴 걸 그랬어요. 생각 안 나셨죠?”라는 엄마의 말이 겹쳐 들렸다.(그 천혜향은 어제저녁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오늘 새벽 배송으로 받았다. 엄마가 자주 목이 마르다고 하셔서 드시라고 씻어 놓은 거고 아직 아무도 안 먹은 상태이다.)
“엄마, 비타민 드링크 드렸어요.”
엄마 닮아 집에 온 사람에게 뭐라도 대접하는 게 습관이 되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베풀기를 좋아하신다.
재작년, 엄마가 제대로 걷지 못하셔서 요양병원에 계실 때는 외래 진료를 내가 모시고 다녔다. 평일에는 직장 일로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 토요일 아침으로 예약을 잡았고, 아픈 동생 아침을 챙기고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채 병원으로 달려가곤 했다. 진료를 세 군데 보고 나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았고 만사가 다 귀찮기만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본인이 드실 간식과 간병인에게 챙겨줄 간식 사는 일에만 관심을 보이셨다.
팔순이 훌쩍 넘어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는 엄마. 다른 사람 챙기는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제발 엄마가 이제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좋겠다.
혹시 엄마는 다른 사람을 챙기고 대접하는 걸로 당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