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 년

by 비니

하루하루는 더디고 일 년은 빠르다. 아침에 딸의 일주기 추모예배를 드렸다. 눈물로 얼룩진 추모의 시간.

참 이상하다. 툭하면 딸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멀쩡하다. 진짜 멀쩡한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

얼마 전 상담받으러 갈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서쪽 하늘’을 들으며 차 안에서 통곡을 했다. 상담 선생님에게 운전 중에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고 말하면서 또 울컥했다.


“혼자 있을 때 많이 울어요. 일할 때나 사람들과 있을 때 통곡할 수는 없으니까요.”

“왜 참으세요? “

”제가 울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요. “

이 말을 하며 울면서 입으로는 웃고 있는 나.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슬픔이 올라오면 우세요. 여기서라도 실컷 우세요. 혼자 있을 때만 울지 마시고요. 눈물이 나면 사람들이 있어도 우셔도 돼요. “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 더니 울라고 하니까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왔다.


어제 딸의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우리 집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닭껍질과 치즈를 꺼냈다. 딸이 남긴 것들을 다 가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정리할 건 정리하려고 한다.

닭껍질이 담긴 비닐팩에 적힌 제조 일자가 슬펐다. 딸이 떠나기 일주일 전에 만들어진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딸도 구매할 때 몰랐을 것이다. 자기가 이걸 못 먹고 갈 거라는 것을.

요리도 베이킹도 뜨개질도 그림도 다 잘했던 내 딸. 똥손인 나를 안 닮아 뭐든지 잘해서 좋았고 엄마보다 훌쩍 커서 흐뭇했다.


엄마 걱정하고 챙겨주던 착한 내 딸. 자식이 먼저 떠난다는 건 너무나 잔인한 운명이다.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에 작가가 수녀로부터 들은 말이 나온다. ‘남한테 일어나는 일이 당신한테는 일어나면 안 되는 거냐’고.

백 번 맞는 말이지만 백 번 틀린 말이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하나 우리는 모두 자식을 먼저 보내는 비극을 겪어서는 안 된다. 팍팍하고 힘든 삶에서 자식보다 오래 사는 일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이 일 년을 얼마나 더 보내야 딸의 곁에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