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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

by 비니

사소한 일로 화가 난 적 있냐고? 있지. 그것도 아주 많이. 어떨 때 화가 나냐고? 엄마와 대화할 때. 대화가 잘 안 되거든.


엄마가 팔순이 넘으시다보니 귀가 잘 안들리셔. 그래서 안방의 텔레비전 볼륨이 무지 커. 내가 출퇴근할 때 인사를 하면 아무 반응이 없어. 목소리를 아주 크게 해서 말해야 해. 매번 크게 말하려고 하니 너무 힘들어. 왜냐면 난 삶에 대한 의욕도, 기운도 없어.

엄마는 당신이 귀가 잘 안들린다는 사실을 인정 안 해. 자녀들이 일부러 작게 말하는 거래. 사람이 나이 들면 인지 능력이 저하될 수 있으니까 이해하라고?

이해는 하지. 문제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거야. 나도 위로가 필요하다고. 아니, 위로는 바라지도 않아. 혼자 있고 싶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알지?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


“너희들……. 그 냄새 맡아 본 적 있어?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를 맡아본 적 있냐 이 말이여.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 리 밖까지 진동을 하는 거여. 내가 정말 너희들에게 한 마디 하겠는데 강두한테 최대한으로 잘해줘야 한다.“


강두(송강호) 아버지가 강두 동생들에게 한 말이야. 영화 개봉했을 때 봤는데 이런 대사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강두 아버지(변희봉)의 말이 왜 내 마음에 꽂혔는지 짐작이 가?

엄마는 말이야, 내가 딸 생각하면서 엉엉 울면 그만 울래. 그렇게 울면 엄마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나이 드신 엄마를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조언은 삼가해줘. 내가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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