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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31. 2021

그날의 기억 (3)

울음소리가 온 산을 가득 매웠다.

엄마와 아빠의 빈소가 마련되었다.

어느 병원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례식장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내려가야 하는 지하였고, 높이 있는 작은 창으로만 빛이 들어오는 어두운 곳이었고, 좁았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부고 소식이었기에 빈소를 찾은 많은 사람들은 들어서기 전부터 울며 왔다.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은 나를 붙잡고 울었다. 나를 불쌍하다 했다. 부모 없는 이 세상 어찌 사냐며 울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사람들이 그토록 불쌍하다 하는 나는, 장례식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던 중,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화재 사건이었기 때문에, 목격자인 내 진술이 필요하다 했다. 이미 한번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그때 다 말했는데, 왜 또 나를 부르는 걸까.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상복을 벗고는 밖으로 나왔다. 경찰서에 가고 싶지 않았다. 무서웠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는 또 도망쳤다.

사고 현장 앞에서도, 아픈 동생을 보고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내내 한 번도 나지 않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병원 주변은 번화한 동네였고, 사람들은 북적였다. 화려한 도시 한가운데서 나만 초라했다.


입관할 때, 내가 부모님의 시신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을 다른 가족들은 만류했다. 심각한 화상으로 인해 훼손이 심하여 알아볼 수도 없다고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보고 싶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더 컸던 걸까. 나는 입관식에 가지 않았다. 입관식에 다녀온 가족들은 매우 슬퍼하고 아파했다. 나는 그때도 울지 않았다.


부모님은 충청도에 있는 가족묘에 합장을 했다. 입구에서부터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울음소리가 온 산을 가득 매웠다. 누군가가 나를 꾸짖었다.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가는 길인데 울지도 않는다고. ‘아이고 아이고’ 곡이라도 하며 보내드려야 좋은 곳으로 간다고. 그러니 어서 울며 곡을 하라고 했다. 하고 싶지 않았다.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쥐어짜내고 싶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도 울지 않았다.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고  ,  달이나 지나서야 처음으로 울었다. 이제 나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제야 실감이 나서 울었다. 그제야  세상에서 더는 만날  없는 엄마가,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나만 혼자 두고 가버린 원망을 실어 펑펑 울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해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혼자만 살아서...

미안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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