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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Nov 17. 2020

배달의 민족

상념의 방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근처에서 자취한 적이 있었다. 20학점 강의, 영화 촬영, 교내외 자잘한 활동 때문에 도저히 집에서 통학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7평 남짓한 방에서 나의 첫 독립생활이 시작됐다. 작은 원룸에는 1구 인덕션과 전자레인지밖에 없었다. 거창한 요리를 할 수는 없었고, 근처에는 딱히 밥집이라고 할 곳도 없었다. 그래서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면 그대로 쓰러져 끼니를 거른 채 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전쟁 같던 하루가 지난 어느 금요일 밤, 텅 빈 냉장고를 보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배는 고팠지만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광고에서 보던 배달 앱이 떠올랐다. 평소 좋아하던 매운 돈가스 주문을 시작으로 내 배달 생활은 주 2회는 필수, 3회는 선택으로 변했다. 첫 배달 음식을 맛보고 나서 느낀 편리함은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주말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게 됐다. 배달 음식과 함께 유튜브를 보고 있노라면 일주일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내 용돈의 80%를 배달 앱에 내주게 됐다. 나의 높은 앵겔 지수는 내 삶의 여유가 부재함을 상징했다.


처음에는 최소 주문 금액과 배달비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내 귀찮음을 해소할 수 있다면 충분히 지급할 용의가 있었다. 엄마가 내게 일러주었던 음식에 대한 가치관도 한몫했을 거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데 돈을 쓰는 건 괜찮다는 것. 수많은 팀플 때문에 더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고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던 날들에는 배달 음식이 내 불만족을 가장 빠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해소해주었다. 애틋했던 배달 앱과의 이별은 내가 본집에 돌아왔을 때 이루어졌다. 더 이상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유로워진 일상으로 돌아오니 음식으로 외로움을 달랠 일도, 귀찮음에 음식을 사 먹을 일도 없었다. 자연스레 나의 앵겔 지수도 낮아졌다.


얼마 전 배달의 민족 VIP들을 다룬 기사를 봤다. 총 사용금액이 1000만 원이 넘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이러한 주문이 지나치게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태만한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컨택트의 세상 속에서 더 이상의 컨택트를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러한 언택트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자신의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편하게 먹으면서 즐기는 일이 유일한 행복이기에 돈을 쓰지 않을까. 동시에 언택트의 확산은 높은 앵겔 지수를 반영하기도 한다. 더 저렴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높은 배달료를 감수하는 일은 결국 그만큼 삶의 여유가 없다는 의미일 테다. 밖에서 먹는 시간과 음식을 해 먹는 노력까지 돈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배달 앱이 바쁜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도피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텅 빈방에서 사람에게 지쳐 치킨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면서도 외로움을 달랬던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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