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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Jan 24. 2021

논현동 뒷골목

시선에서



“나 오늘 지명 콜 받았잖아~ 대신 내 친구 두 명 불렀어. 우리 30분 후에 끝나니까 미용실 앞으로 픽업 와!”


새벽 다섯 시. 15평 남짓한 미용실. 대강 보아도 족히 열다섯 명이 넘어 보이는 손님들. 그녀의 대화 소리를 듣게 된 건 긴 기다림에 지쳐 있을 때였다. 면접 예상 답변을 준비한 프린트를 보다 집중이 되지 않아 거울 속 내 모습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벽면 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티브이에선 복면을 쓴 가수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미로운 목소리에 빠져 있을 때 그녀의 들뜬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온 미용실을 뒤덮을 만큼 크게 대화를 하는 소리에 자연스레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대놓고 쳐다보는 것이 실례라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계속해서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인생 첫 면접을 보기 위해 머리를 손질하고 메이크업을 받으러 간 24시 미용실이었다. 이른 소집 시간에 맞춰 새벽에 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곳이었다. 이 미용실은 논현동 뒷골목에 있었다. 논현동에 가끔 술을 마시러 친구들과 온 적은 있었다. 하지만 늦다고 하면 늦지만, 이르다고 하면 이른 새벽 다섯 시에 이 공간에 와본 적은 처음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조금 이른 시간인 새벽 다섯 시. 미용실에는 사람이 끊길 새가 없이 20대 젊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오갔다. 심지어 긴 대기 시간 때문에 짜증을 내며 돌아가는 손님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완벽한 메이크업 상태에 편한 옷차림을 하고 와 머리 손질만 받고 금세 미용실에서 나갔다. 손님이 나갈 때마다 문 밖에는 검은색의 큰 벤이나 콜택시가 어느샌가 도착해있었다. 그리고선 그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났다. 자리에 남은 이들은 핸드폰을 보며 무감각하게 머리 손질을 받기도 하고,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신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직원들은 기계적인 손짓을 반복하며 손님들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표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봤을 때 나와 직원들을 제외한 이 공간 속 여성들은 대부분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 같았다. 섣부른 일반화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러 정황상 합리적인 추론에 의하면 그러했다. 새벽 다섯 시에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머리를 하는 젊은 여자들로 붐비는 이 미용실의 공기가 내겐 너무 낯설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나만 외딴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공간 내에서 그들 사이에 공유되는 대화와 감정들이 있었는데,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더. 그곳에서 나는 불청객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이곳의 모든 것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손님들도, 직원들도 모두. 이 낯선 상황이 어색해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조심스러웠다. 그들을 보지 않으려 일부러 거울 속 나의 모습만 보거나, 괜스레 핸드폰만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내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슬쩍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잠깐일 뿐. 그저 자신들의 머리와 얼굴을 점검하거나 누가 더 돈을 많이 받았냐는 등과 같은 대화에 더 집중했다.


아침 6시가 되자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미용실을 떠났다. 그제야 부산했던 공간이 조용해졌다. 아까와 달리 텅 빈자리는 나와 같이 면접을 앞둔 청년들이 하나둘씩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동안 면접과 관련 없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손에 꼭 쥔 면접 준비용 종이 더미와 그들의 모습이 계속 교차했다. 대부분 내 또래로 보였다는 점이 더 신경 쓰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와 너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느껴진 이질감 때문에 한동안 면접은 잊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한 시간 동안 느꼈던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뒤엉켜 머리가 복잡했다.


모든 손질이 끝난 뒤 나간 논현동 뒷골목은 조용했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로 가득 찼던 가게들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닫은 것이었다. 그중 눈에 들어온 것은 건물마다 위치한 타로/점 집들이 었다. 들어오면서 새벽에 열려 있는 게 신기하네, 정도로 보고 지나쳤었다. 하지만 다시 본 굳게 닫힌 타로/점 집의 모습은 미용실 속 그녀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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