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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n 11. 2023

자만추가 세상에 어디 있어

인만추보다 인위적인 자만추 연애법

만남은 자연스러울 수 있어도 연애의 시작이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미국 등 서양문화권에서는 사귀자는 말 없이 데이트를 하다가 데이팅(dating)하는 상태가 되고 그 기간이 지나 “우리 무슨 사이야?” 하면 “내 여자친구가 되어줄 수 있니?”라고 하고 “그래. ”라고 하면 좀 더 진지한 남자친구, 여자친구 관계(boyfriend and girlfriend)가 된다. “데이팅”이라는 상태가 되기 전에 자고 만남 추구를 할 수도 있고 “데이팅” 상태 중에 서로만 만나는 상태(exclusive, 익스클루시브)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도 만나서 데이팅 할 수도 있다. 스킨십도 자유롭게 하고 소위 남자친구, 여자친구 사이에서 할 법한 것들은 하지만 정신적으로 아직 그렇게 친밀해지지는 않은 상태를 “데이팅”이라고 부른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관계가 되어야 서로만 만날 수 있는 “익스클루시브”가 되는 것이다. 남자친구, 여자친구라고 불러도 서로 타협하기에 따라 익스클루시브가 아닐 수도 있다. 직접 경험해 본 것은 아니고 리얼리티쇼나 미국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배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애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와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인만추에는 소개팅, 소개팅앱, 결혼정보회사, 미팅, 미팅주선용 모임 등에서 만나는 것이 있고 자만추에는 학교, 직장, 여행지, 학원, 스터디 모임, 기타 이성과의 만남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은 타목적성이 분명한 모임 등에서 만나는 것 등이 있다. 번호 따기나 클럽에서 만나는 것은 시도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여기저기 번호를 따러 다니거나, 이성을 만나러 클럽에 다니는 사람에게는 인만추겠고, 그냥 갈 길을 가거나 클럽에 놀러 갔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서 가끔씩 번호를 딴다는 사람은 이를 자만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번호 따기의 의도에 따른 인만추, 자만추 분류법을 연애 목적이 아닌 곳에서의 만남에도 적용을 해본다면 연애 목적도 함께 염두에 두고 학교, 학원, 여행을 가고 스터디, 모임 등을 한다면 이 역시 인만추 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분류법은 무용한 분류법이다.


학교에 공부를 하러 가지 연애를 하러 가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지인이 대학원에 괜찮은 남자들이 없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돌려 생각하면 이 대학원에 가면 좋은 남자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염두에 두고 그 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뜻이다. 물론 연애나 결혼할 사람 찾기가 제1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직장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토대를 마련해 가고 있는, 연애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여자, 남자들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이상향의 이성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머릿속에 우선순위 1~2순위 안에 있다. 경험 상 미혼의 또래들을 만나보면 딱 두 부류로 나눠졌다. 더 잘게 쪼개면 세 부류. 이성에 아예 관심이 없고(없다고 말하는, 자신이 이성에게 매력 어필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해 버린) 돈 버는 것이나 덕질에만 관심 있는 부류와 연애에 관심이 있는 부류. 세 부류로 나누면, 1) 연애를 포기한 부류, 2) 이성에게 관심 있는 부류, 3) 동성에게 관심 있는 부류가 있다.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는 모임 등 특정한 취미를 돈 내고 배우는 모임이 아닌 곳에서야 2번과 3번 부류에게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늘 조금이라도 열려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스터디 모임이든, 경제 모임, 독서 모임이든 나가면 대부분이 다 비연애중일까. 올해 들어 이런 모임에 나가기 시작해 봤는데 몇 개월 전에, 혹은 최근에 헤어졌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애를 할 때는 바쁘다. 직장도 다니고, 사업도 하는 와중에 연애도 해야 한다. 저녁시간이든 주말이든 데이트로 채워져 있고, 외롭지도 않아서 사람 만날 필요성을 못 느낀다. 함께 할 미래에 대해 생각하느라, 내가 하고 싶었던 자기계발은 조금 뒷전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이별을 하고 시간이 많아지면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찾아보게 된다. 그래서 이별 후 자기계발 모임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나는 영어스터디는 영어강사로 직종변경을 고민해서 영어를 진짜 잘하고 싶고, 경력도 쌓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고, 경제 관련 모임은 돈 버는데 관심 있어서 한두 번 갔다가 사람들과 결도 잘 안 맞고 유령회원이라 탈퇴했고, 독서 모임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성인일 것 같고,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사고방식이 건전하고 마음이 예쁜 사람인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책이야 늘 혼자 읽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도 생각보다 그렇게 깊게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독서 모임에 나온 사람들보다는 나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둘 간의 케미가 더 좋다고 느꼈다. 아마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선정한 다른 사람도 내가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하는 말을 듣고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각자 다른 책을 읽고 소개하는 자리가 더 나았다. 경제 관련 독서 모임은 인문서가 아니라 논리적이고 딱딱한 내용이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배우는 점이 많아서 만족도가 더  높았다.


막상 모임을 나가다 보니 역시 모임에 꾸준히 나가려면 마음에 드는 동성이나 이성이 있어야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이 예쁘고 잘생겨야 수업 들을 맛이 나고 성적도 쭉쭉 오르듯이 스터디 모임도 마찬가지이다.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모임에 계속 가고 싶다. 의외의 프로참석러 기질을 올해 들어 대학교 때 이후 몇 년 만에 발휘하고 있는데, 역시 사람들 때문이다. 직장 생활에서 사람들한테 치이며 나는 여러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나랑 제일 잘 맞는 한 사람 만나서 연애만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람들 만나는 자리에 나가보니 나는 사람들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똑똑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만 가다 보니, 아니면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남게 되는 건지는 몰라도 자연스럽게 내 모습을 보여줘도 사람들이(특히 여자 동생들이) 나를 좋아해 줘서 힐링을 듬뿍 받고 있다.


자만추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모임에서 자만추는 정말 어렵다. 목적 자체가 이성을 만나는 목적으로 모인 자리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사랑에 걸려버리게 되는 사람이 생긴다면, 상사병을 그만 앓고 싶으면 바보짓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대시를 하고 그 사람의 실체를 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일상을 온통 그 사람 생각으로 채워버리거나. 연애적령기, 결혼적령기에 짝사랑을 하며 시간을 낭비해선 안된다. 짝사랑도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한다. 이 사랑이 끝나야 다음 사랑을 할 수 있다. 데이트 신청을 면전에서, 카톡에서, 인스타그램 dm에서 거절당하거나, 몇 번 데이트를 했으면 고백해서 차이기라고 해야 한다. 어쩔 때는 이 사람과 아주 잘 맞지 않겠다는 것을 알고도 사랑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때도 앓고 지나가야 끝이 난다. 방향이 사랑이라면 짧은 연애라도 일단 추진을 하고, 50번이든 100번이든, 상대방이 인내심이 없다면 5번이든, 1번이든 싸우고 안 맞다는 것을 깨닫고 정리를 하면 된다.


“자만추” 플레이스에서 사랑병에 걸리는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저 관심이 생기게 된 정도라면 어떨까? 이때도 “자만추”라는 것은 없다. 학교나 직장이 아니라 모임이라면 참석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다. 그 사람을 언제 또 보게 될지는 기약이 없다. 나는 이곳저곳에 다니기보다 좋아하는 곳을 계속 가는 것을 좋아하는 정착형 사람이라 같은 모임에 계속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회는 알아서 만들어야 한다. 그 사람이 올지 안 올지 모르니, 일단 내가 계속 가든, 그 사람의 참석 여부를 알 수 있다면 참석하는 곳에는 무조건 등장하든 하면서 노출 효과를 노려야 한다. 노출 효과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 누군가를 자주 보면 편해지고, 편한 사람에게는 호감이 생긴다. 그리고 불편하다면 거리를 둘 테니, 이 사람이 나를 부담스러워하는지 최소한 파악이 가능하다.


이렇게 만사 제치고 인위적으로 “자만추”를 해야 하는데 세상에 자만추가 어디 있을까?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최선을 다해 등장한 다음에는 그 사람과 최대한 밀착해서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좋은 모습도 보이고, 챙겨주기도 하면서 호감을 쌓아야 한다. 그 사람에게 유독 자주, 그리고 조금 더 길게 향하는 시선으로 “어, 나 좋아하나?”라는 신호도 은근하게 심어줘야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주 인위적으로 개인적인 연락을 따로 취해봐야 하고, 아주 아주 큰 용기를 내서 데이트 신청도 해야 한다. 스터디나 모임에서 만난 사람에게 이 모든 용기를 끌어올린다는 것은 인만추에서 만난 사람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만추에서 데이트 신청과 연락을 예의의 영역, 알아가는 차원의 영역으로 슬쩍 밀어 넣고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먹어도 되지만 모임에서의 데이트 신청은 어쩔 수 없이 상대방에게 “나한테 관심 있나?”라는 마음을 들 게 할 수밖에 없다. 모임에서 기존에 형성한 편한 사람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릴 각오, 그리고 둘 다가 꽤 쿨하지 않다면 둘 중 한 명이 모임에 더 이상 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 각오까지 해야 한다.


때로는 이 부자연스러움이 부담스러워서 그저 편한 사람친구처럼 대하며 데이트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되기 전의 상태도 “데이팅”이라고 부르듯이 데이트를 하고 싶다면 이 시점에서만큼은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고, 관심이 있어서 조금 더 둘이서 시간을 보내며 알아가고 싶은 것이어도 친구로 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잠재적 연인으로서 알아가고 싶다는 것을 용기 내서 진지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트를 해 봤는데 친구에 가깝다고 서로 판단을 하고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것은 괜찮지만, 이성으로서 알아보고 싶은 것인데 너무 편한 사이인 것처럼 다가가는 것은 비겁하다. 상대방이 헷갈리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매너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만추” 플레이스에서 만났더라도 첫 데이트는 첫 데이트답게, 상대방이 나를 가볍게 생각한다고 느끼지 않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것이 좋다.


여미새, 남미새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 돌아다닌다. 현실을 직시하자. 연애 중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애에 열려 있는 상태로 모임을 가입하고, 여자 남자 성비가 맞춰져 있는 자리에 시간을 내서 참석한다. 1번 부류(연애 포기)나 드물게 3번 부류(게이) 아니면 대부분 2번 부류(이성과의 만남 추구)이다. 모임에서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든 다가갈 수 있다. 이 여자, 저 여자, 이 남자, 저 남자에게 플러팅을 하면서 누구 하나 걸려라는 마인드로 추하게 행동하면 땡미새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눈에는 보이는 젠틀한 땡미새도 있다. 젠틀한 척하는 젠미새는 나한테는 빼고 그러더라. 나한테 했다간 신고당할까 봐 무서운가 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세상 불친절하고 나한테는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괜찮다. 연애의 시작은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인위적인 것이 진심이고 용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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