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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Aug 16. 2023

주는 사랑의 함정

난 할 만큼 했는데…

연애를 거의 쉬지 않고 하는 것의 이면에는 그리 눈이 높지 않은 것도 포함된다. 올해 사주 보러 가서 들었던 말 중에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사주를 물었는데, 본인이 별로 그런 것에 관심 없지 않냐고 물으셨다. 속으로 '아니, 나 연애 관심 엄청 많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런데, 나 진짜 연애에 관심 있나. 난 연애 말고 이별 전문인데. 난 그냥 호기심이 많아서 마음이 뭐 하나로 가득 차면 일단 저질러봐야 하는 성격인데. 그래서 그냥 연애도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내 마음에 누군가가 들어오면 직진해 보는 것뿐인데. 누구 만나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 눈에 들어오던데. 바람을 피지는 않지만 그래도 호기심은 생기던데.


연애를 하면 단지 관계 속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하겠던데. 연애에서 바라는 게 행복한 것 밖에 없어서 행복보다 불만이 커지면 못 견디겠던데. 나는 만남, 연락, 표현, 맛집 찾기, 맛있는 것 사주기, 좋은 곳 데려가 주기, 안정감 주기, 내 남자친구만 바라보기, 성욕 채워주기,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심어주기, 열심히 살아서 나만 열심히 산단 생각에 억울하게 만들지 않기, 현생에 대한 불만 들어주기… 다 했는데.


이것들 나한테 다 채워주면서 숨 막히게도 안 하는 사람 있었나.


없었다. 그래서 연애 유지를 못했다. 거짓말을 했거나, 너무 연락을 틈 없이 해서 숨이 막혔거나, 외모가 마음에 안 들었거나, 그가 내 현생에 만족 못했거나 갖가지 이유로 헤어졌지만, 헤어진 진짜 이유? 이십 대 후반부터 헤어진 진짜 이유는 내가 만족 못해서다.


직업이나 재산에 만족 못해서 헤어졌을까? 실제론 아니다. 연락, 표현, 만남의 적절한 밸런스로 좋은 기분을 유지시켜 줬다면 계속 그 속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기분 좋은데, 행복한데 헤어질 수 있었을까? 물론 무식함은 용납할 수 없다. 최소한 책은 읽어야 한다. 지적인 대화가 안 되는 상대와는 연락, 표현, 만남이 100점이어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독서를 하고, 어느 정도의 지적인 대화가 되면서, 적당한 수준의 감정적 교류가 된다면 계속 만났을 것이다.


난 동기부여 귀신인데. 동기부여만 되면 뭐든 엄청 열심히 하는데. 나 끈기 없지 않은데. 나 뭐든 열심히 하고, 남들 다 나가떨어져도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서 결국 성취와 성과로 만들어내는데. 왜..? 연애는 이렇게 유지하기 어려웠던 거지? 왜 연애는 끈기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지?


그런데, 연애가 끈기가 있어야 하나? 연애를 꼭 길게 해야 하나? 만족하지 못하는 관계를 꼭 참아야 하나? 세상에는 멋진 남자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각기 다른 매력으로 무장한 다음 후보들이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데? 왜??? 내가 우선순위의 1순위가 아닌 것 같은 사람을 참아줘야 하지? 난 많이 포기하고 양보했는데? 그냥 마음 하나로 이 사람 선택했는데 왜?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머릿속에 카드를 하나씩 여는 그림이 펼쳐진다. 카드를 한 장씩 연다.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도 질질 끌며 일단 만나본다. 그런데, 결국 못 참아서 헤어진다. 다음 카드를 연다. 첫 번째 카드에는 없는 능력치와 장점이 있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런데, 단점을 참을 수가 없다. 두 번째 카드를 뒤집는다. 세 번째 카드를 연다. 괜찮아 보인다. 특별한 단점은 없다. 그런데, 아무런 매력이 없다. 아무런 동기부여도 생기지 않는다. 세 번째 카드를 뒤집는다. 네 번째 카드를 연다. 첫 번째 카드의 캐릭터와 꽤 비슷한 캐릭터다. 첫 번째 카드 그래도 꽤 오래 함께 했으니, 첫 번째 카드와 비슷한 이 카드에 그냥 만족할까 싶다.


카드놀이를 반복하며 내 능력치는 올라갔다. 카드 속 캐릭터의 장점을 흡수해 표현력도 올라가고, 배포도 커졌다. 첫 번째 카드 속 캐릭터의 단점은 이제 참아줄 수 있다. 네 번째 카드, 이번 카드. 내게 첫 번째 카드처럼 매력적이고 애틋하진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더 넓은 아량, 더 넓은 포용력으로 품어준다. 난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그런데 돌아오는 게 없다. 10을 주면 10은 아니더라도 3 정도는 돌려받고 싶은데, 이 카드는 응답이 없다. 매력적인 첫 번째 카드가 그립다. 똑같이 돌려주지 않았어도 이목을 끄는 화려함이 있었다. 연애, 마치 이 카드 게임 같다. 카드는 무수히 많고, 계속 한 카드를 덮고 다른 카드를 여는데 점점 만족도가 떨어진다.


이 카드를 덮고 다음 카드를 열면 계속 이 만족도 저하가 계속되는 거 아니야? 누군가와 함께할 때 할 수 있는 것들에 점점 질적 저하가 일어나는 것 아니야? 난 이미 카드 게임 망한 것 아니야? 그냥 첫 번째 카드를 꼭 쥐고 있었어야 이기는 게임이었던 것 아니야? 게임이 이렇게 설계되어 있으면 네 번째 카드에도 만족 못해도 그냥 머물러야 되는 것 아니야?


이미 난 진 것 아니야? 아니 어쩌면 카드 없이 혼자 살아야 되는 것 아니야? 연애나 사람이 원래 나한테 뭔가를 주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은 것 아니야? 나는 주는 사랑만 하게 되어있는 거야? 사랑을 듬뿍 주는 카드 열면 얼른 뒤집도록 설계된 것 아니야? 그건 너무 슬프고 불공평한 것 아니야?


받는 것도 받는 사람만 계속 받게 설계된 것 아니야?


나도 표현받고 싶고, 사랑 듬뿍 받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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